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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음 속에서 의미가 버젓이 살아있어요.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늘은 또 무슨 글을 쓸까?' 생각을 하다가

어제 청소기를 봐서 그런지 계속 청소기에 눈이 갑니다.


이 편지에 자주 등장하는 청소기의 흡입구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 날개가 달린 모양입니다.

양쪽 날개가 90도 가까이 꺾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공간을 마구 휘젓고 다니면 마치 양 날개를 퍼덕이는 듯 보입니다.


'양 날개처럼'.

나무둘 심리상담사은 이런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붓다가 말한 그것이 떠오르는 것이지요.

지혜와 자비의 양 날개.


깨달음을 향해 날아가기 위해서는

지혜와 자비가 균형 있게 겸비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쪽 날개로만 나는 새는 없듯이

한쪽 성품만 갖고 깨달음에 이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지혜와 자비는 쉽게 이야기해서

머리와 가슴, 이성과 감성.


둘 모두 충족되어야 양 날갯짓의 리듬을 타고

깨달음까지 무사히 건너갈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바깥에서 카펫을 텁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초록 나무와 하얗고 푸른 하늘의 조합이 참 좋습니다.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화려한 꽃도 향도 따라잡을 수 없는

탁 트인 자유로움, 완전한 해방.


아름다움은 본래

아름다움을 주장하지 않아도

아름다워야 하는 법.


아무 주장도 없이

그 자리에 늘 있는 하늘과 나무는

아름다운 생명의 지극한 표현입니다.


더하거나 뺄 것이 전혀 없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아름다움.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같은 자리를 한결같이 지키면서도 늘 새로운 하늘과 나무를 보며

걸핏하면 청소의 의미나 의의를 찾던 내가 보입니다.

그리고 '양 날개'로 생각은 다시 돌아옵니다.


의미는 의미 없음과 짝이겠구나.

왼쪽에는 의미의 날개.

오른쪽에는 의미 없음의 날개.

의미를 추구함이 있다면

의미를 추구하지 않음도 있겠구나.

두 날개가 짝을 이루어야 날아가겠구나.


완전한 자유로 날아가려면

의미를 찾는 것과 동시에

의미를 찾지 않음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하늘처럼

저 나무처럼


가만히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품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작은 깨달음이 찾아오고

오늘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내 안에 질문이 일어나도 답하지 않고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지켜보고 품어주고 기다립니다.


의미를 찾지 않아도

의미가 없는 한가운데

모든 의미가 충족되는

진공묘유의 자리에 앉습니다.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혹은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가 없나요?

오히려 의미 없음 속에서 의미가 버젓이 살아있지는 않나요?


오늘은 오른쪽 날개도 파닥이기로 합니다.

의미를 찾지 않고 의미와 짝을 이룹니다.


찾지 않는 마음으로

그 속이 텅 비어 한량없이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닦습니다.


의미 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그 밑이 뚫려 한계를 알 수 없이

담아낼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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