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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는 그대로 완벽하도다.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오랜만에 엎지르기 신공을 행합니다.

먼지를 털다가 화병에 있는 물을 엎지른 것이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음 완벽하군!


'있어야 할 시간에

있어야 할 장소에

있어야 할 것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있다.'


오늘 나무둘 라디오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청소를 하기 전에 내 입으로 내뱉은 이야기.

그 말이 왕성하게 살아서 내 삶에 적용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생각으로 현실과 싸우기 전에는.


현실은 하나의 흠도 없이 늘 온전합니다.

생각이 현실과 다른 것을 요구하기 전에는.


생각이 탄생하지 않자

물이 쏟아진 채로 좋습니다.

아니 쏟아지던 역동적 움직임은 이미 종료됐으니

쏟아졌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물이 탁자에 있습니다.

그 자체로 완벽합니다.


탁자에 퍼져있는 물을 닦고

계단을 청소하러 갑니다.

작은 벌레가 보입니다.

다리를 웅크리고 있는 것이 이미 죽은 듯합니다.

빗자루로 쓸어 담으려고 하는데

순간 몸을 날렵하게 뒤척이며 살아있음을 알립니다.

그러고는 또 죽은 듯이 가만히 멈추어 있습니다.


오호.

도가풍 심리상담사의 머리에 싸움닭이 떠오릅니다.

중국 고전에 나오는 싸움닭 훈련 이야기.

최고의 싸움닭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싸움닭은 '우두커니 가만히'를 성취합니다.

하수일 때의 용맹함, 강인함, 저돌성을 다 잃고

어떤 도발에도 동요하지 않고 나무 조각상처럼 멈추어

태연자약한 경지에 들어갑니다.


이 작은 벌레에서 그 향기를 느낍니다.

가만히 멈추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모든 인생의 고통을 초월한 무림의 고수가

미동도 하지 않고 나에게 한 마디 건넵니다.


넌 지금 있는 그대로 멈추어 있을 줄 아니?

인생 고수는 이렇게 산단다.


계단 청소를 마치고 다시 그 자리에 가봅니다.

인생 고수가 꿈쩍도 않고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아무 고통도 없이

아무 스트레스도 없이

있는 그대로 있을 줄 알며.


있어야 할 정확히 바로 그곳에

있어야 할 정확히 바로 그 시간에

있어야 할 정확히 바로 그 모습 그대로

모든 내적 외적 싸움에서 승리한 채 완벽하게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에 정확히 있나요?

당신은 '여기'에 정확히 있나요?

당신은 오늘 있는 그대로 맞갖게 있나요?


오늘 나는

가만히 내 자리를 지키고

인생 고수를 흉내 내 봅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완벽함을 바라보며

모든 고통을 초월하는 연습을 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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