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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오늘의 꿈틀거림으로 충분한 거야.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어린이날이 낀 긴 연휴를 보내고 돌아오니

몸이 가동되는 게 영 시원찮습니다.

정신도 느릿느릿, 몸도 느릿느릿

그래도 관성대로 꿈틀꿈틀 움직입니다.


청소기로 바닥을 밀고 있는데

어라, 못 보던 생명체가 보입니다.

꿈틀꿈틀 작은 공벌레가 기어가고 있습니다.


밀어버릴 뻔했잖아.

혼잣말을 내뱉으며 공벌레를 피해 청소기를 밉니다.

그리고 작은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아 그래, 인생은 오늘의 꿈틀거림으로 충분한 거야.


실은 오늘은 새벽부터 뭔가 불충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삶이 조금 더 충만해질 수 있을까?

대체 뭐가 부족해서 새벽부터 이런 느낌이 들지?


마음의 앙금처럼 남아있던 것이

공벌레의 꿈틀거림에 흩어져 사라집니다.


하루살이처럼 하루를 충만하게 꿈틀대자.

이 생각은 며칠 전 읽은 에세이의 일화로 옮겨 갑니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청년밥상 '문간'을 운영하는 이문수 신부님의 에세이.

제목 그대로 청년들이 끼니를 굶고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삶의 문간방이 되어주는 식당 '문간' 이야기입니다.

그 식당에서는 3천 원짜리 김치찌개를 판다고 하지요.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부님의 핸드폰 배경화면에는 한 남자가 웃고 있답니다.

40여 년 간 스페인의 한 수도원의 주방을 책임졌던 까를로스 수사님입니다.

그다지 거룩해 보이지도 않는 주방 일,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노동을 반복하며

일요일도 없이 동료 형제들의 삼시 세끼를 해먹이셨다고 합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는 수도원 형제들에게 전해진 고인의 약력.

'19세에 수도회에 입회하여 20세에 수련을 받고 21세에 첫 서원을 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히혼으로 발령받았다. 23세에 주방 소임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42년 동안 주방 소임을 다했다.'


나에게는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 속의 인물일 뿐인데

뭔지 모를 숙연함이 느껴져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42년, 그러니까 내가 군대 있던 나이부터 시작해서 평생 밥을 하다가 떠나신 거구나.


위대함이란 그런 것입니다.

매일매일 꿈틀대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앞으로 40여 년을 똑같이 청소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수사님의 정신만은 닮고 싶습니다.


한결같이 꾸준히 해 나가는 것.

과거가 과거대로 최선이었음을 알고

오늘은 오늘 주어진 이대로가 최선임을 알고

오늘의 소임을 다하는 것.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을

충분함으로 채우려 하지 않는 것.

나에게 '더 열심'을 요구하지 않는 것.

지금 나의 꿈틀거림에서 완벽함을 보는 것.


이렇게 생각이 연결되고 정리되면서

새벽의 불충분함이 아침 안개처럼 걷힙니다.

오늘도 꿈틀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만족스럽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다시 공벌레가 있던 자리로 돌아옵니다.

아직도 공벌레는 바닥 타일 한 칸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허나 얼마나 갔는지 따지는 건 인간인 나의 관념일 뿐.

공벌레는 여전히 자기 나름대로 충실히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오늘 어떻게 꿈틀대고 있나요?

그 꿈틀거림은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남기나요?

앞으로 40여 년을 계속 꿈틀대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 나는 공벌레와 함께 꿈틀대며

내게 주어진 나의 소임, 청소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오늘의 꿈틀거림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오늘 나의 꿈틀거림이 내 꿈의 틀을 단단히 짜고 있는 것이라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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