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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할 때

by 나무둘

어떤 아침엔 눈을 뜨는 일조차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의 소음이 밀려오기 전 아직 고요한 이불 속에 몸을 더 깊이 파묻고 싶은 날들이 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예감.

지쳐 있는 나를 끌어당기는 반복의 무게.

그리고 그 아래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이 소리 없이 웅크리고 있다.


그는 그 감정을 몇 년을 넘게 안고 살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무기력과 열등감 그리고 아주 엷게 발라진 삶에 대한 실망 같은 것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마음 한켠에 자리를 틀고 앉아

하루하루를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잠식해왔던 감정들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친구가 건넨 책 한 권에서 작은 불빛을 만났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에 몰입하면서 그는 오랜만에 ‘살아 있는 느낌’을 느꼈다.

그 느낌은 전혀 요란하지 않았고 누구의 눈에도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몰입은 스스로를 향한 첫 번째 다정한 시선이었다.


우리는 종종 내일을 바꾸기 위해 큰 결심이나 외적인 성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쩌면 내일이 두려운 마음을 치유하는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닌 나를 조금 더 이해하려는 진심 어린 시도인지도 모른다.


울퉁불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

조금 더 정직한 언어로 내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 모든 게 쌓여 결국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을 때도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는 슬픔도 있었고 안도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이려는 조용한 의지가 있었다.


그렇게 한 줄씩 하루씩 조금은 다르게 써 내려가는 내일.

누구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 하루는 분명히 ‘나'의 것이고

그것은 다시 살아내고 싶은 삶의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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