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은 약함이 아니라 살아있음의 증거

by 나무둘

감정을 느끼는 일은 언제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과 맞닿아 있다.

그건 마치 한겨울 눈밭 속에 묻힌 작은 씨앗을 손으로 조심스레 파내는 것처럼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동시에 단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는 오랫동안 감정을 분석하려 애써왔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 일에 대해 그는 왜 이런 반응을 했는지 차분히 쪼개고 조합하고 도식화하는 것. 그 방식은 그를 보호하는 전략이었고 동시에 그를 감정에서 멀어지게 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머리로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왜 여전히 가슴이 무거울까?

왜 설명은 완벽한데 여전히 답답할까?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그는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레 배우고 있다.

"불안해."라고 말해보는 순간 마음 어딘가가 미세하게 움직인다.

"억울했어."라고 고백하는 순간 그 말 한 마디가 묶여 있던 숨을 풀어낸다.

그것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살아 있다는 건 슬픔을 말할 수 있다는 것.

두려움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들이 그를 망치지 않을 것임을 신뢰하는 것이다.


어릴 적 그는 자주 들었다.

"울면 지는 거야." "그런 건 참아야 해."

그래서 그는 눈물대신 웃는 법을 배웠고 마음이 아플 때도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얼룩지게 했다.


하지만 이젠 조금씩 그 배운 것들을 내려놓는 중이다. 느끼는 연습은 마치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처럼 서툴고 겁이 나지만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목소리 덕분에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상담실 안에서 누군가가 그의 감정을 들여다봐 주는 순간 그는 비로소 그 감정을 살아낸다.

"불안하구나."

그 한마디는 마치 그의 안에 누군가 조용히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 같다. 이 낯선 말들이 언젠가는 그의 언어가 되고 그의 감정이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감정을 느낀다는 건 지금 이 순간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언어다. 살아 있다는 건 그 모든 감정들과 함께 오늘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는 그렇게 조금씩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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