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회복하고 있다는 징표
겨울을 닮은 마음에도 봄이 찾아온다.
아무도 몰랐던 마음의 벽 너머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던 건 단단한 얼음이 아니었다.
꺼내지 못한 말들과 눌러 담았던 눈물
그리고 아직 닿지 못한 따뜻함이었다.
감정을 느끼는 용기란
그 얼어붙은 마음을 마주할 작은 불씨 하나를 품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때 그는 감정을 감추는 일이 어른스러움이라고 믿었다.
슬픔을 드러내면 약하다고 생각했고
기쁨조차 조심스럽게 아꼈다.
너무 기뻐하면 곧 잃게 될까 두려웠으니까.
그러다 보니 감정이라는 것은 어느새 그에게 '통제해야 할 것'이 되었고
결국 느끼는 법마저 서툴러졌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버틴 날들 속에서 그가 놓치고 있던 건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자유'였다는 걸 이제야 안다.
그 자유는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에 울컥할 수 있는 마음,
혼자 있는 밤에 스스로를 다정히 쓰다듬는 손길,
그리고 벽 너머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 같은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어릴 적 울음을 삼키며 선택한 생존의 방식들을 안고 자란다.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살아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벽 안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
벽을 쌓았던 손으로 그 벽을 허물 수도 있으니까.
그 손끝엔 오래전부터 '느끼고 싶었던' 마음이 떨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감정을 느끼는 건 다시 상처받겠다는 각오가 아니라
다시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다.
기꺼이 슬퍼질 수 있다는 건
이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 어떤 감정이든 느끼고 있다면
-그게 서글픔이든 그리움이든 이름 없는 외로움이든-
그 자체로 그는 용감하다.
눈물은 연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회복하고 있다는 징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