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사랑보다 깊은 상처

숨겨진 기대는 어긋나기 마련이다.

by 나무둘

그림자는 언제나 발밑에 있지만 정작 고개를 숙여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기대'라는 이름의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밝은 빛을 받으며 시작된 관계 속에서 그늘처럼 조용히 따라붙는 그 기대는 어느새 짙어지고 무거워지고 때로는 감정을 가린 안개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결혼이라는 이름의 여정에서 그는 수없이 그 그림자와 부딪쳤다. 처음엔 몰랐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에는 분명 다정함만이 담겨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손엔 '당신도 나처럼 해줄 거라 믿는 마음'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변화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이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의 기대는 때로 사랑보다 더 깊이 상처를 남겼다.


'투명하게 바라본다'는 말은 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상대방을 더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 안의 렌즈를 닦아내는 일에 가까웠다. 마치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듯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이토록 실망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예민하게 만드는지, 그 감정의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만나는 건 상대가 아닌 '자신'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충족되기를 바란 어떤 이상을 사랑했던 것이라고.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 속에는 소유욕이, 통제욕이, 그리고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요구하는 무조건적 수용에 대한 갈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 이후로 그는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상대가 무심히 던진 말에 가슴이 뻐근해질 때면 그 말의 의도가 아닌 자신의 반응을 먼저 들여다본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메타인지적 접근을 시도했다. 왜 이 말이 자신을 흔드는지 자신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묻는다.


그렇게 바라본 자신은 어쩌면 더 연약했고 더 많은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거절당할까 봐, 버림받을까 봐,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까 봐 떨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두려움들이 기대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관계를 투명하게 바라본다는 건,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를 인식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상대방의 행동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실은 자신 안의 미해결된 감정의 반영임을 깨닫는 순간들이 늘어갔다.


그 마주함이야말로 조금 더 이해에 가까워지는 시작점이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상대방의 그림자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끼리의 불완전한 사랑이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정한 친밀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기대는 사랑의 그림자다. 그림자를 밟고 걷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와 함께 걷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사랑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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