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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Apr 21. 2022

모든 심리적 문제의 만병통치약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 살기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서 존재하기. 


인생살이에 대한 격언 중에 늘 으뜸으로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우리는 늘 이 순간만 존재하는 것이요, 여기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시간과 공간에서 이를 놓치고 살기 일쑤입니다. 


정신장애, 모든 심리적 문제는 이로 인해 발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과 '여기'에서 이탈한 정신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병한다는 것이지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에서 벗어난 생각과 감정이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핵심 신념으로 굳어진 당위적 생각들이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게 하고 생각과 감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몇 가지 성격장애를 예로 들어볼까요? 


편집성 :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어. 

자기애성 : 나는 우월하니까 특별대우를 받아야 해.

경계선 : 결국 나는 버림받을 거야.  

회피성 : 내 진짜 모습을 알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야. 

의존성 :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 

강박성 : 제대로 살려면 더 노력해야 해. 


위의 문장들에서 어떤 패턴이 보이나요? 잘 보면 전부 단정 짓는 문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될 것이다. ~하다. ~해야 한다'는 문장들입니다. 세상과 타인,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미 규정된 생각들. 이 생각들 때문에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 타인, 나 자신은 꼭 그 생각만큼의 한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진짜 세상이 아니라 내 생각에 빠진 세상이지요. 


생각에 빠졌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나요? 지금 여기에서 생생히 펼쳐지고 있는 삶을 외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지나간 사건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치밀한 분석 덕분에, 그 정교한 해석 덕분에 급기야 하나의 견고한 틀을 가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내가 보는 세상은 진실한 세상이 아닌 게 됩니다. 그 세상은 내 입맛에 맞게 왜곡되고 채색된 세상입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늘 그 모양 그 꼴이 됩니다. 아뿔싸. 이를 간파하게 되면 탄식이 절로 나오지요. 


상황이 이런즉 위의 예시 문장들에 딴지를 걸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 그렇니?'


진실로 진지하게 내면에 질문을 하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 생각들이 겨우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제아무리 아주 견고한 틀이라고 해도 그건 생각일 뿐입니다. 그걸 심리상담에서는 핵심신념이니 스키마(도식)니 부르지만 원론적으로는 생각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과 내가 가진 견고한 생각은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생각'은 살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 몸을 생생히 느끼고 눈앞에 오고 가는 것들에 눈을 번쩍 뜨고 있다면 '생각'은 나비가 벗은 허물 같은 것에 불과합니다. 


위의 예시 문장들을 다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고 할 때 나는 오감으로 살아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지어낸 생각의 믿음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나는 우월하다고 할 때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어떤 우열을 가를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결국 나는 버림받을 거라고 할 때 버림받기는커녕 이 순간 여기에서 잘도 숨 쉬고 살아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진짜 모습을 알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할 때 내가 버젓이 드러나는데도 나를 전혀 싫어하지 않고 있는 눈앞의 수많은 사람들을 나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때 지금 여기에서 남들의 도움이 없이도 이미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까막눈인 것입니다. 제대로 살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할 때 더 노력을 하든 하지 않든 지금 여기에서 완전하게 살아있는 나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리적인 문제는 가상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극미하게 작아진, 사실은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지금 이 순간 여기'에는 문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많은 심리적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든 유유히 흐르고 있는 현실의 흐름에 깨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격장애뿐만 아니라 흔한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을 이탈한 정신은 그 자체로 병을 키웁니다. 반대로 지금 여기로 돌아오면 증상은 더 이상 커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깨어 살면 심리적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이 됩니다. 내가 왜곡하고 채색한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유쾌한 곳입니다. 이 선명한 세상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모든 심리적 문제가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현실에 맑게 깨어나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살맛 나는 곳이 됩니다.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 살기. 

이쯤 되면 가히 만병통치약이라고 부를 만하지요? 심리적 고통이 느껴질 때는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내 몸에서, 눈앞의 현실에서 이탈하려는 정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건 생각일 뿐이야. 

이 순간에는 '지금 여기'밖에 없어. 

'지금 여기'에서는 있는 그대로 살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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