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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은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면

현실의 무게는 심리적인 짐보다 가볍다.

by 나무둘

'이렇게 해야만 할까요?'

심리상담 중에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때 마음속에서는 이미 그것을 해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하는 의도는 어떤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주위에 자문도 구한 결과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으로 그 부담을 지지 않을 차선책은 없을지 상담자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이라면 상담사에게도 달리 뾰족한 수는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 정도로 찾아보고 궁리했다면 그렇게 해야만 할 일일 겁니다. 그게 부담스럽다는 것이 그것이 꼭 해야만 하는 일임을 알려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겁게 다가오고 피하고 싶다는 것은 꼭 그런 수밖에 없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하면 좋을 것이 있습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그것은 막상 겪어보면 내 상상보다는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에게나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상상 속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보다 막상 일을 치르고 보니 별게 아니라고 느꼈던 경험 말이지요. 아직 마주하지 않았을 때의 두려움이 클 뿐이지, 실제 행동으로 움직여 나갈 때의 고통은 그 두려움에 비하면 사소합니다.


피하고 싶은 상황인데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의식 위로 점차 분명하게 떠오른다면 내가 두려움을 무릅썼던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일단 그 일에 뛰어들고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했던 경험을 상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일을 감당하기 꺼려하면서 심리적인 무게를 끌어안고 사느니 얼른 그 실체가 없는 관념적인 짐이라도 내려놓는 것입니다. 가볍게 마음을 먹고 차라리 실제 행동을 할 여력을 비축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입니다.


어차피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꺼이 맞닥뜨리는 것이 좋습니다. 기꺼이 맞닥뜨릴 때는 적어도 내 삶의 주도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도살장 끌려가듯이 어쩔 수 없이 한다면 결과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보다 아쉬운 점은 이미 시작부터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피하지도 못했는데 억지로 꾸역꾸역 한다면 얼굴이 참 화끈거리는 일입니다. 너무 하기 싫은 나머지 나 자신을 부끄럽게까지 만들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냐'라고 묻고 싶을 때는 차라리 '이렇게 할 겁니다'라고 다짐을 세우세요. 영 안 될 일이다 싶으면 상담사가 다시 생각해보자고 뜯어말릴 테니까요. 하지만 대개는 그 의지를 칭송하며 건투를 빌어줄 겁니다. 심리적인 짐 대신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로 한 당신은 분명 그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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