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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Apr 29. 2022

마음 뒷전 심리상담, 굳세어라 현실아!

가끔 마음의 스위치를 꺼두어도 좋다.

심리상담은 마음을 최우선으로 다루는 작업입니다. 어디에서도 제대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던 내 마음을 살뜰히 보살피는 현장. 그래서 가끔은 눈물바다가 되기도 하는 현장이 심리상담입니다. 오랜 시간 묵혀 놓았던 감정이 풀리고 꽉 막혔던 가슴이 뚫리니 눈물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 다시 흐르는구나. 나의 곱디 고운 이 마음! 


늘 이렇게 아름답게만 진행되면 좋으련만. 

아쉽지만 심리상담에서도 때로는 외과 수술 같은 강제성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외과 수술은 내부의 자기 치유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지 못할 때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시행을 하지요. 억지로 살을 째고 내부를 뜯어고치는 외부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외과 수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심리상담에서도 외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꼭 필요해서 필수적으로 행해야 할 심리치료적 개입이 쓰일 때 언제일까요? 대개 급격한 트라우마 반응, 자살충동 위기 상황 같은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마음을 최우선으로 돌볼 때가 아닙니다. 먼저 몸을 잘 보살피고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 됩니다. 이때 마음의 흐름을 촉진시키는 등 일반적인 심리치료적 접근을 하게 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당장은 신체 건강과 일상 생활을 단단하게 만들어 마음을 돌볼 뿌리를 튼튼히 해두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힘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심리치료 작업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꼭 극단적인 상황에만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에만 주의를 기울이며 현실을 간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경우라도 유효합니다. 아무리 마음을 낫게 해보려고 해도 나아지지 않을 때 우리는 현실에 주의를 더 많이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경우는 몸을 잘 돌보지 않고 있거나 일상생활을 아무렇게나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무렇게나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하면 살이 빠질 리가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서 기상할 때 마음이 상쾌하길 바란다면 큰 오산입니다.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신체 건강, 생활 건강입니다.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 때는 이 둘 먼저 바로잡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마음을 경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을 뒷전에 놓고 현실을 충실히 살려는 데에만 정성을 쏟는 것입니다. 지금의 마음이라고 해봐야 자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나를 몰아가는 것이라면 잠시 마음의 스위치를 꺼두어도 좋습니다. 그 마음 언젠가는 반드시 곱디곱게 알아줄 터이니 나는 일단 내 현실을 하나씩 정갈하게 챙기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개기, 밥 세 끼를 건강한 식단으로 꼭꼭 씹어 천천히 먹기, 밥 먹었으면 양치질하기, 하루 30분 정도 햇빛을 받으면서 걷거나 뛰기, 자기 전에 발 닦기, 스마트폰 하지 말고 고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자기 등등. 유치원 때부터 배웠던 아주 기초적인 생활습관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몸과 일상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을 때에는 훗날 본격적으로 마음을 다루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마음을 무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마음 내키지 않아도 생활 습관을 건강하게 하고 내 몸을 잘 돌보면 마음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약간의 의욕과 자신감이 돌아옵니다. 마음의 엔진이 따듯하게 가열되고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마음의 불이 켜졌다는 신호가 돌아오면 그때부터 마음을 한껏 돌보면 됩니다. 그동안 제쳐두어서 미안했다고 하면서 안아주고 쓰담쓰담합니다. 정신이 돌아온 마음도 우리를 환영할 테지요. 아마도 마음이 먼저 그동안 괴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할지 모릅니다. 돌아온 듯하지만 가장 빠르고 현명한 길. 결국 마음은 이렇게 돌보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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