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작품 해설
1. 도스토옙스키 : 가난, 유형, 간질, 도박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60년을 살았던 그의 인생은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가난 혹은 돈
빈민병원의 군의관이었고 소지주였던 아버지를 둔 그는 밑천이라고는 자신의 머리밖에 없는 '지식인 프롤레타리아'였다. 게다가 전업 작가가 된 순간부터 가난은 그에게 필연이 되었다. 가난과 신분 콤플렉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 열등감과 자만심을 오가는 극단적인 성격은 인간을 향한 병적일 만큼 강렬한 연민 못지않게 도스토옙스키를 힘들게 했다.
팔 년에 걸친 유형 생활
그가 사회주의적 경향을 띤 모임에 참석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 스물여덟 살 때였다. 애초부터 '경고형'으로 계획됐던 사형 집행은 극적인 순간에 취소되었고 감옥과 부대에서 팔 년을 보낸다. 그 시절 그가 읽을 수 있었던 유일한 책이 성경이었다. 8년 후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그는 극우 보수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초기작에는 거의 보이지 않던 신이 소설의 화두로 등장한다.
간질병
작가가 된 이후 그는 평생 동안 주기적으로 간질 발작에 시달렸다. 간질병이 도스토옙스키에게 선사한 것은 순간의 미학 혹은 '문턱의 시간'이다. 간질 발작이 시작되고 의식이 완전히 명멸하기 직전의 순간을 작가는 세계의 모든 비밀을 꿰뚫을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난뱅이들, 술주정뱅이들의 광기에 가까운 몽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도박에 대한 열정
도박은 돈 자체보다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시험 및 도전의 동의어이다. 그의 장편 소설이 늘 모종의 결정을 겨냥하는 것도, 주인공들이 모든 측면에서 극단을 달리며 파열 일보 직전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도박으로 인생이 망가진 경우가 아니다. 방대한 양의 글을 썼고 가정에도 평균이상의 아버지이며 남편의 노릇을 했다. 다만 현실감각과 재무능력이 없어 아내 안나가 십사 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남편이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살림꾼이자 뛰어난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문학사를 뛰어넘는 위업을 이룩한 작품을 쓰기까지 작가는 매 순간 자신의 천재성을 의심했으며 '고양이 같은 생명력'과 도저한 장인 정신을 발휘하며 소설을 써 나갔다. 그 정점에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있는 것이다.
2. 작품의 줄거리
지방 도시의 지주인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천재적인 어릿광대이여 이기주의와 탐욕의 집적체이다. 그에게는 미챠(첫 부인 아들), 이반과 알료샤(두 번째 부인 아들) 이렇게 세 아들이 있으나 어렸을 때부터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 그리고 이 마을 백치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 집의 젊은 하인 스메르쟈코프 역시 카라마조프의 아들로 추정된다.
어느 날, 세 아들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카라마조프를 찾아온다. 그중 가장 큰 문제가 아버지와 재산 문제를 담판 지으러 온 첫째 아들 미챠이다. 미챠는 약혼녀 카체리나가 있었지만 카라마조프가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여온 여인 그루셴카에게 깊이 빠져 버린다. 하지만 그루셴카는 아버지와 아들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애만 태운다.
둘째 아들 이반은 형 미챠의 일로 카체리나를 만나게 되는데 이반은 카체리나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카체리나도 진작에 이반을 사랑하게 됐지만 오만한 '자기기만'에 빠져 미챠를 사랑한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살고 있는 셋째 아들 알료샤는 이 가족 간의 불화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며 중간에서 가족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집안의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들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수도원에서의 회합은 요란한 스캔들로 끝나고 만다. 카라마조프는 그루셴카가 자신을 선택하면 주려고 3000 루블을 봉투에 담아두고 그녀를 매일 기다린다. 어느 날 저녁 그루셴카가 아버지 카라마조프의 집에 있다고 오해한 미챠가 아버지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미챠는 아버지 집 바로 옆 정자에서 그루셴카가 아버지의 집에 오는지 감시를 한다.
게다가 미챠는 돈이 미치도록 필요하다. 그래서 카체리나가 자신의 친척에서 송금해 달라고 부탁한 돈 3000 루블을 가로채서 그루셴카와 다른 도시에서 파티를 벌이며 흥청망청 돈을 써버린다. 이 일로 그루셴카가 자신에게 올 경우 함께 떠날 돈이 필요하게 된다. 이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루셴카가 자신을 속이고 떠난 것을 알고 속았다는 생각에 폭발 직전의 분노를 안고 아버지의 집으로 달려간다.
늦은 밤, 카라마조프의 집은 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이반은 모스크바로 떠났고 카라마조프의 충직한 하인 그리고리는 병으로 독한 약을 먹고 부인과 잠들어 있고 스메르쟈코프 역시 극심한 간질 발작으로 의식 불명 상태이다. 미챠는 담장을 넘어 들어가 아버지 카라마조프와 마주치지만 그루셴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도망치다가 그리고리의 추적을 받게 된다.
그때 미챠는 가지고 있던 놋쇠 공으로 그리고리의 머리를 때려서 피투성이를 만들고 그루셴카의 집으로 다시 달려간다. 하녀에게 그루셴카가 첫사랑의 부름을 받고 이웃 도시로 떠난 것을 알고 좌절을 느낀다. 미챠는 그루셴카를 쫓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자살하고자 결심한다. 그래서 저당 잡힌 권총을 되찾고 갑자기 거금의 돈과 유서를 들고 그루셴카에게 간다.
이웃 도시에서 그루셴카와 그 일행들을 만난 미챠는 예상과는 달리 첫사랑에 실망한 그루셴카를 보게 되고 그루셴카는 이때 미챠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드디어 그루셴카의 마음을 얻은 행복한 순간에 미챠는 아버지 카라마조프 살해 혐의로 체포된다. 예심이 시작되고 미챠는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넘치는 증거들이 미챠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이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이반은 스메르쟈코프를 찾아가서 진실을 알고자 한다. 그러나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이 아버지가 살해될 걸 알면서도 모스크바로 떠난 것을 보고 자신에게 살인을 사주한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죽였다고 고백하며 카라마조프 살인에 관해 이반은 유죄라고 외친다. 그러면서 카라마조프를 죽이고 가지고 나온 3000 루블을 이반에게 준다. 이반은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이 아버지의 살인자라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섬망에 사로 잡힌다. 이반은 점점 미쳐간다.
재판 시작 전날 스메르쟈코프는 '아무에게도 죄를 돌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목숨을 끊는다'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마침내 공판이 열리고 유능한 변호사의 변론과 이반과 알료샤의 증언에도 수많은 증인과 불리한 증거로 인해 미챠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병에 걸린 이반을 돌보는 카체리나와 알료샤는 미챠의 탈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섬망성 열병으로 병원에 수용된 미챠와 카체리나는 만나서 화해한다. 알료샤는 미챠에게 모욕을 당했던 이등대위 아들 일류샤의 장례식을 마치고 그를 따르는 아이들에게 희망적이고 미래를 향한 연설을 한다. 아이들은 감동한다.
"아이들이여, 사랑스러운 벗들이여, 삶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뭐든 참되고 좋은 일을 한다면 삶이란 정말 좋은 것입니다!"
3. 죄와 벌, 구원의 문제
이반은 알료샤에게 '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요지의 신앙 고백을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통틀어 낭만적인 후광을 전혀 입지 않은 순수 악의 화신은 스메르쟈코프가 유일하다.
일류샤의 무덤 곁에 모인 아이들은 그 자체로 미래적 전망이며, 일류샤-밀알을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그래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을 통해서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주제이기도 한 구원, 부활, 불멸 등이 단순히 종교적 개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생명을 얻는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예순을 바라보던 도스토옙스키의 고백록이면서 동시에 그의 두 아이, 나아가 모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세계 앞에 바쳐진 유언서인 것이다.
*이 글은 민음사에서 출판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번역한 김연경의 작품해설을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