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곳에 서린 깊은 슬픔
올레 10코스를 걷는 날이다.
올레 10코스는 15.6킬로미터로 화순금 모래 해수욕장부터 사계포구와 송악산, 섯알오름을 거쳐 하모 체육공원에서 끝난다.
함께 걷기(아카자봉)를 신청했다. 시작점으로 가보니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봉사자는 어제 9코스를 안내했던 분이었다. 반가워서 인사를 했더니 기억을 못 했다. 무심한 건 때때로 매력이기도 했다.
봉사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런저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투덜투덜했다. 그가 봉사하는 코스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있었다. 무뚝뚝하면서도 설명을 재미있고 자세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3월인데도 날씨가 초겨울처럼 쌀쌀했다. 제주의 3월은 변덕이 심한 날씨로 아침저녁은 초겨울처럼 춥고 낮에는 봄 같다. 경량패딩을 안에 입고 기모 레깅스도 바지 안에 입었더니 든든하기는 했다. 걷기 시작했는데 사람이 많다 보니 움직임이 둔했다.
10코스도 시작부터 대뜸 등산이다. '썩은 다리(사근다리) 탐방로'오름으로 올라갔다. 썩은 다리는 다리가 썩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은 용암에 익숙했던 제주도 사람들은 화산재로 굳어진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암석을 약하다고 생각해서 사근다리 혹은 썩은 다리라고 불렀다. 썩은 다리 탐방로는 40m의 오름으로 뜨거운 마그마와 차가운 물의 폭발적인 반응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썩은 다리 화산체는 인근 용머리와 단산 등과 함께 제주도 형성과정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탐방로는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오르막이 끝나고 정상에 오르니 평평한 숲길이어서 걷기에 좋았고 풍경도 아름다웠다.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 송악산이 정면으로 보였다.
산방산이 보이자 봉사자가 이야기를 하나 해줬다. 어느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사슴을 발견하고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빗나가 옥황상제의 엉덩이에 맞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서 던졌고 그것이 서쪽으로 날아가 바닷가에 박혔다. 봉우리가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고 서쪽 바닷가에 떨어진 봉우리가 산방산이라고 한다. 산방산의 아래 둘레와 백록담의 아래 둘레가 엇비슷하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제 난이도 최고인 9코스를 다녀온 나는 감기가 시작되려는지 콧물이 자꾸 났다. 그래도 몸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아서 걷는 건 괜찮았는데 올라가는 길은 유난히 힘들었다. 하루정도 쉬어야 할 때가 다가옴을 느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사계포구를 지나 사계화석발견지를 지나는데 이곳은 중기 구석기시대 사람 및 동물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라고 착각하는데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만 발견된 곳이고 공룡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송악산 입구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쉬었다. 송악산 올라가는 게 힘드니까 충분히 쉬라는 뜻이었다. 송악산길은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많아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송악산에서 드디어 스틱을 꺼냈다. 올라가는 곳이 많아지자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섯알오름으로 향했다. 섯알은 서쪽에 있는 작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봉사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알아서 힘든 것도 있다고 했다. 바로 여기가 그곳이라고. 제주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 있는 아픔을 알면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했다. 섯알오름을 설명하는 안내문에는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다크 투어리즘은 비극적인 역사나 죽음, 재난이 있었던 장소를 찾아가 그 사건을 기억하고 성찰하는 여행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패색이 짙었던 일본은 항복을 하지 않고 제주도를 일본을 향하는 공격을 막는 전초기지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제주도민 반이상은 죽었을 거라고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남북한이 모두 투표하여 하나의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거부하고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던 이승만을 반대해서 선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주도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려 학살을 당해야 했다. 그 희생자들이 묻힌 곳이 바로 섯알오름 일대이다.
그들을 추모하는 장소로 ' 백조일손지묘'라는 묘역이 있다. “백 명의 조상이 한 자손을 둔 것처럼 함께 모셨다”는 뜻이다.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이 모두 섞여 있어서 신원을 구분할 수 없어 여러 유해를 함께 모셔 만든 공동 묘역이다. 그래서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코스가 끝나갈 즈음이어서 다들 조금씩 지쳐가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먹먹해져서 말이 없어졌다. 이런 아픈 역사 위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뜨르 비행장이 나왔다. 일제 강점기 군사 비행장이었던 알뜨르 비행장은 1930년대 일본군이 만든 군사 비행장이다. 당시 일본은 제주를 태평양 전쟁의 전진기지로 활용하려 했다. 그래서 이곳에 활주로, 격납고,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비행기를 숨기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격납고는 지금도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이곳에서 특공기(가미카제) 훈련도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어린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내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격납고 앞 밭 고랑이 너무도 정갈하게 갈아져 있어서 더 슬펐다.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를 알게 해 준 10코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