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과 오름, 올레 9코스

난이도가 높은 이유가 있었네

by 정안

올레 9코스를 걷는 날이다.

9코스는 12킬로미터로 거리는 짧았지만 난이도가 제일 높은 '상'이었다. 서귀포 쪽 올레가 대부분 바닷길이라 난이도가 높지 않았는데 9코스는 오름이 있고 높은 계곡이 있어서 난이도가 높았다.


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출발해서 화순금 모래해수욕장에서 끝난다. 함께걷기(아카자봉)를 신청했다. 9시 정도 도착하니 무뚝뚝해 보이는 자원봉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걷기는 출발시간이 9시 30분이다.


기다리면서 전날 걸으려다가 묘지가 많아서 포기했던 11코스에 대해 봉사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올레길 중 혼자 특히 여성 혼자 걸어서는 안 되는 한 개의 길이 있다면 11코스라고 했다. 남자인 자신도 그곳을 걸을 때 곶자왈은 피해서 걷는다고 했다. 일단 묘지가 많고 곶자왈 어느 곳에서는 핸드폰도 안 터진다고. 들개도 가끔 출몰해서 들개에 물린 여성도 봤다고 했다. 나는 안 걷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아카자봉을 신청해서 걸어야겠다.


참여자들이 하나둘 모여 모두 7명이 되었다. 3월 초였지만 아침공기가 꽤 싸늘했다. 꽁꽁 싸매고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대뜸 오르막이 시작됐다. 말이 다니던 '기정길'이라고 했다. 말을 배에 태워서 이동하기 위해서 바다에 적응하는 훈련을 파도소리가 들리는 산중턱에서 했다. 말을 모아 놓으면 자연스럽게 대장말이 정해지고 그 대장말만 산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수차례 시키고 나면 이동할 때 대장말을 따라 다른 말들도 배에 탔다. 자원봉사자는 처음의 무뚝뚝한 모습과는 다르게 설명을 재미있고 알아듣기 쉽게 잘했다.


평지만 걷던 몸이 갑자기 산 위로 올라가니 숨차고 힘들었다. 준비운동도 없이 갑자기 오르막을 오르고 나서 헉헉대고 있는 우리에게 봉사자가 말했다. 이게 준비운동이었다고.(우 씨...) 다행히 평지인 숲길이 나와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터널을 이룬 숲길이 군데군데 나왔다. 여럿이 가니까 괜찮지 혼자라면 좀 무서울 것 같았다.


하지만 기정길은 워밍업이었다. 군산오름 가는 길은 계속 올라가는 길이었다. 길은 폭신해서 걷기 좋았지만 오르막이라 힘이 들고 숨이 찼다. 봉사자는 날다람쥐처럼 잘 걸었다. 오르막에서도 쉬지 않고 이것저것 설명을 해줬다. 지형, 역사, 식물에 대한 이야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좋은 봉사자를 만났다.


점심은 봉사자가 예약해 준 식당에 가서 닭볶음탕과 생선조림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근처에 커피집이 있어 들어가서 커피를 마셨다. 9코스 걷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 무언가를 묻지는 않았지만 혼자온 20대, 30대, 50대 두 명과 같이 온 60대 2명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엉뚱한 대화를 한번 적어본다.

60대분이 갑자기 제일 젊은 20대에게 "몇 학년이세요"했다. "4학년이에요"했다. 나와 30대는 깜짝 놀라서 "정말요! "하며 놀라워했다. 그랬더니 질문을 했던 분이 "제주대학교 4학년이구나" "아니요 제주대학교 아니에요"


질문했던 분은 멀리 앉아 있어서 제주에 와서 한 달 이상 지내고 있다는 말을 잘못 듣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나는 더 심각했다. 그분이 질문할 때 몇 학년이냐고 해서 나이를 말할 때 50대면 5학년 이런 식의 질문을 한 줄 알고 어린 사람한테 이상하게 질문하시네 생각했다. 그리고 4학년이라는 말에 40대라는 말인 줄 알고 격하고 놀란 것이다. 그 젊은 친구는 내가 너무 놀라서 좀 의아했을 것이다.


나는 종종 이렇게 이루어지는 대화를 경험했다. 일상에서도 있지만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가끔씩 그랬다. 타인의 말을 그다지 깊이 있게 듣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을 거면 잘 들어야겠다.


군산오름(334미터)은 "군산에 산소를 쓰면 영웅이 난다"라고 할 정도로 명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을에는 가뭄이 든다"라는 말이 있다. 군산오름의 기운이 강해서 그 힘이 한 집안으로 모이면 주변 마을의 물기운이 마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군산오름에 몰래 쓴 묘를 파내고 나면 비가 내렸다고 한다.


군산오름 정상은 올레 스탬프 중간지점이다. 다른 곳과 다르게 스탬프를 찍는 도장을 보관하는 통 안에 호랑이 그림이 있다. 군산오름의 강한 기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상에서는 원래 멀리 한라산, 산방산, 남쪽바다가 보이는데 우리가 간 날은 안개가 많아 윤곽만 어렴풋이 보였다. 가까운 마을과 한라봉이나 귤을 키우는 하우스인지 햇살에 반짝이는 하우스가 풍경의 절반이었다.


오름에서 내려와 안덕계곡을 향했다. 군산오름에서 내려온 물길이 만들어 낸 깊은 골짜기인 안덕계곡은 제주에서는 드물게 절벽과 큰 바위, 난대림의 울창한 숲이 함께 있는 계곡이다. 또한 현무암 절벽이 높게 형성되어 검은 바위 절벽과 깊은 물웅덩이가 있다. 이 숲은 제주에서도 보존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식물군락지로 보호되고 있다.


걸어가고 있는데 같이 가던 한 사람이 어느 정자에서 한라봉을 먹자고 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한라봉이 맛있어서 스무 박스를 주문해서 자신의 거래처에 보냈는데 농장 사장님이 고마웠는지 올레길 9코스를 걷는다는 말을 듣고 한라봉을 9코스 가는 길 정자에 놓아둘 테니 같이 걷는 사람들과 나눠먹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자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라봉을 놓아둔 것을 어떻게 찾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정자로 갔다. 농장 사장님이 재밌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며.


정자에 가니 귤이 커다란 박스에 담겨 있었는데 올레꾼들을 위해 놓아둔 것이었다. 가져가지는 말고 한 개씩 먹으라는 메모가 있었다. 이건 아닐 것 같아서 다 같이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농장 사장님이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이 든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귤도 한라봉도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감사하다며 먹었다. 농장 사장님은 제주 환경보호 활동과 지질 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민간위원으로 일하고 계신 분이었다. 그러면서 안덕계곡에 제주에서는 보기 힘든 계단식 논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고 했다. 이것을 농업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정자에서 바라보니 제주에서 보기 힘든 숲의 모습이었고 계곡은 아래로 깊었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상태인데도 안덕계곡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계곡에는 창고천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흐르고 있었다. 건천이 대부분인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안덕계곡(최고 120미터)에서 내려와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이름이 희한했다. '개끄리 민교'. 봉사자에게 물어보니 개구리 다리가 있고 그 개구리 다리 밑에 있는 다리라는 뜻이라고 했다. 봉사자는 9코스 안내판에 있는 제주어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제주도 말은 참 재밌고 아름답다.


올레 9코스는 길이는 짧지만 오르막이 많아 9시 30분에 시작해서 4시가 다되어 끝났다. 아름다운 풍경과 풍부한 설명,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우리를 이끌어준 봉사자가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