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0-1코스
가파도에 가려고 숙소를 나섰다.
올레스테이에서 15분 걸어가면 서귀포환승센터(서귀포등기소)가 있다. 이곳에서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는 50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10분쯤 걸리는 모슬포 운진항에서 내리면 된다. 운진항에서 가파도까지는 배로 10분 걸리는 가까운 거리이다.
배표는 미리 인터넷 예약을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출발 전 발권을 받아야 했다. 창구에서 발권을 받으려고 했더니 안내하시는 분이 지금 10시 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11시 배를 예약했는데 일찍 와서 앞의 배가 떠나기 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좋다고 했다. 게다가 가파도는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10시 배로 들어가면 2시간 후인 11시 20분에 나오는 배를 타야 했다. 예약할 때 아예 그렇게 정해져 있어서 나오는 시간을 선택할 수 없었다.
10시 배로 바꿔주면서 나오는 시간은 그대로 하겠냐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가파도 올레길은 걷는 길이가 4.5킬로미터로 짧아서 좀 쉬자는 차원에 온 것이라 천천히 걷고 차도 마시면서 여유롭게 있다 나오고 싶었다. 2시간은 짧지만 4시간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배는 승객으로 꽉 차있었다. 가족단위, 연인, 친구, 모임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가파도에 도착하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배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날씨는 더없이 화창했고 바다는 푸르렀다. 올레 시작점에서 스탬프를 찍고 걷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도 올레 표지는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자유롭고 신나 보였다. 가파도는 제주에서는 드물게 평지로 이루어진 섬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가파도 올레길은 해안도로를 걷다가 가운데 마을길을 지나 다시 해안도로를 걷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파초등학교를 지나 전망대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데 청보리밭과 산방산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전체가 유리로 된 카페가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풍경을 보고 싶게 만드는 카페였다. 들어가서 주문을 하면서 디카페인 커피가 있는지 묻자 카페 사장님이 보리커피를 추천했다. 맛은 커피와 같지만 볶은 보리로 만든 것이라 디카페인이라고 하면서. 나는 보리커피와 땅콩쿠키 하나를 주문했다.
보리커피를 마시고 감탄했다. 커피 맛이 그대로 났다. 작은 땅콩 쿠키와 보리커피도 잘 어울렸다. 청보리 들판이 펼쳐진 끝에 푸른 바다가 일렁이고 흰구름이 그림을 그려놓은 하늘 아래 산방산과 송악산의 모습이 보였다. 혼자 앉아서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내 앞에 있는 경치를 바라보았다. 다른 무언가를 보려고 고개를 조금도 돌리지 않고 그냥 시선에 들어오는 것만 보았다. 따뜻한 커피가 몸 안에 퍼지고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은 행복감이 되어 온몸에 퍼졌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많이 와서 여기저기서 서로를 부르는 다정한 소리가 들렸다. 문득 나도 가족과 와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올레길을 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가파도에서 느꼈다. 그래서 겨울 추위보다 봄날의 외로움이 더 시리다고 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파도는 혼자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아니 혼자 가면 더 좋은 곳이다. 낮고 평평한 섬이라 외진 곳이 없고 사방이 트여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혼자여도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단지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바닷가를 걸어 가파 치안센터 앞에 있는 올레 10-1코스 종점 도장을 찍었다. 걸어가면서 보니 해물라면이나 해물 짬뽕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식당이 많은 거리를 지나니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곳이 나왔다. 가파도는 탄소 없는 깨끗한 섬으로 전봇대를 모두 지중화해서 태풍에도 정전이 되는 일이 없어졌다는 내용이 벽화에 쓰여 있었다. 전봇대가 없어서 가파도의 풍경이 유난히 깨끗해 보였던 것이다.
마을길을 걷고 있는데 몇 년 전 왔을 때 먹었던 핫도그집이 보였다.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주문을 했다. 맛집인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노란색으로 칠한 아담한 가게와 마당에 피어있는 노란색꽃이 잘 어우러져 있는 집이었다. 핫도그와 미숫가루 한잔을 주문해서 먹었다. 핫도그는 여전히 바삭하고 맛있었다.
가파도 어르신들은 지나가다 인사를 하면 잘 받아 주셨다. 그분들의 일상에 침입자 같은 우리가 달갑지 않을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충분히 가파도를 즐긴 날이었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가파도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