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아침을 든든히 먹고 샌딩서비스 차를 탔다.
7명이 탔는데 모두 5코스에 간다고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무슨 동아리처럼 5코스 시작점에서 다같이 출발했다.
알고 보니 나와 혼자온 한 사람을 제외한 5명은 전날 아카자봉을 신청해서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완주를 한 5명이 마음이 맞아 저녁을 같이 먹고 오늘도 의기투합해서 같이 걷는 것이라고 했다. 은퇴한 부부와 세 사람은 각자 혼자 온 사람이었다.
올레길에서 만난 올레꾼들 사이에서는 이름과 나이, 직업 등을 묻지 않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대화를 하다 보면 묻지 않아도 조금씩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됐다. 하지만 올레길이 끝나면서 대부분 그 인연도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다 같이 시작 스탬프를 찍고 간단한 체조를 한 다음 출발했다. 5코스는 남원포구에서 출발해서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를 거쳐 쇠소깍 다리에서 마무리하는 코스이다.
출발하면서 바로 알게 되었다. 무엇이 처음 만난 이들을 가족처럼 끈끈하게 만들었는지. 모두에게 관심이 있는 왕언니가 있었고, 점심식사나 갈 만한 카페를 미리 챙기고 앞장서서 걸으면서 방해물을 치워주고 구성원들이 잘 따라오는지 살피는 청년, 너그러운 은퇴 부부와 명랑하게 대화를 잘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혼자 걸었던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지만 즐거웠다.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대화상대가 바뀌었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
5코스는 13킬로미터로 걷기에 적당한 거리인 데다가 바닷가 올레길로 풍경이 아름다웠다. 가끔 바닷가 돌길을 걸어야 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평지의 바닷길이라 걷기 좋았다. 혼자 걸어도 괜찮은 길이었다. 아침 일찍 내린 비로 날씨가 흐려서 걷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올레 5코스는 대부분 바닷길이지만 터널을 이룬 숲길도 간간이 있었다. 걷기 초반에 큰엉 해안을 걷고 있는데 숲의 모양이 한반도 지도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신기해서 모두 출사 나온 사진반 회원들처럼 사진을 찍었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에 도착을 했는데 동백은 대부분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도 우리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곳에 중간 스탬프가 있어서 찍고 나서 보니 이곳이 만들어진 사연을 적은 안내문이 있었다.
이곳은 150년 전 위미리의 '현맹춘’이라는 여성분이 황무지였던 이 땅을 사서 직접 동백 씨앗을 뿌려 만든 숲이었다. 제주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제주를 대표하는 동백 명소라고 한다. 현재 400그루의 동백나무가 돌담을 따라 이어져 있고 제주도 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동백은 1~2월이 절정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의지가 이렇게 아름다운 동백숲을 만든 것이 놀라웠다.
위미항은 항구로 근처도 잘 정비가 되어 있는 번성한 곳이었다. 위미항이 있는 마을에서 가성비 좋은 맛집을 찾아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만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생선과 돼지고기, 배추된장국, 두부부침 등이 나왔다. 밥을 먹고 각자 계산을 했다. 식당 주인장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한 명 한 명 계산해 주었다.
청년의 제안으로 올레길에 미친 자신이 매년 오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모두 좋다고 하고 카페를 향해 가다가 보니 '서연의 집'이 있었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나왔던 집이 카페로 된 곳이다. 2012년 개봉했는데 아련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청년이 소개한 카페는 커피가 아주 맛있었다. 수평선이 아름다운 바닷가 자그마한 카페였는데 말수가 적은 사장님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한참을 걸어가는데 많은 수의 해녀들이 바다에서 테왁을 들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려 보이는 해녀들이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이었다. 해녀교실 같은 것이 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최근에 본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애순 엄마가 떠올랐다. 이제 막 물질을 시작하는 애기 해녀들의 삶을 혼자서 응원하며 지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5코스 종점인 쇠소깍에 도착했다. 쇠소깍 가까운 곳에 숙소로 가는 버스가 있어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아쉬운지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나만 못가고 모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 친한 작가 두 명이 제주시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모임에 못 간 것이 아쉽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조각조각 들었던 그들 각자의 사연들, 모두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헤어졌다. 5코스는 우연히 동행한 좋은 사람들이 있어 같이 걷는 즐거움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헤어지는 즐거움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