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기 좋은 올레 8코스

나 자신에게 집중했던 시간

by 정안

아침을 먹고 샌딩서비스 차를 타고 올레 8코스 시작인 월평아왜낭목 쉼터에서 내렸다.


오늘은 동행이 없어 혼자 걷기 시작했다. 혼자 걷는다는 사실에 기분이 설렜다. 하지만 긴 길이라 중간에 외진 곳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되기는 했다. 시작점에서 두 사람을 만났는데 올레길 탐사단이라고 하면서 할 일이 많은지 먼저 앞서서 가버렸다.


올레 8코스도 어제 4코스와 마찬가지로 20킬로미터의 긴 길이고 바닷길이다. 선선한 공기와 햇살이 활짝 퍼지는 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15분 정도 걸으니 약천사라는 절이 나왔다. 규모가 아주 큰 절이었고 건물이 아름다웠다. 게다가 절 안으로 올레길이 나 있었다. 절에 가면 대웅전에 가서 꼭 절을 하라고 하신 엄마말이 생각나서 부처님께 인사를 했다.


어제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큰시큰하던 한쪽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올라갈 때는 안 아픈데 내려올 때 아팠다. 저녁에 파스라도 붙이고 자야 했는데 무심했다. 내 발목한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걸었다. 걷다 보니 편의점이 있어 물파스를 샀다. 편의점 주인장은 사람을 만난 게 반가운지 혼자 왔느냐부터 이 말 저 말을 시켰다. 그러면서 바다 쪽 올레길이 그늘이기는 해도 별 볼 게 없으니 그냥 쭉 뻗은 길로 가도 된다고 했다. 내가 발목이 아프다고 하니 배려해서 한말이었다.


나는 바닷길로 걸었다. 데크길이 이어지면서 바다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러면서 편의점 주인장을 생각했다. 자신들은 매일 보니 이게 별 볼 게 없는 거였지...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고 따가운 햇빛은 나무그늘에 가려져 내 얼굴까지 닿지 못했다.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었다.


가끔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차소리처럼 들려서 걷다가 옆으로 비켜서곤 했다. 그랬다가 차가 들어올 리 없는 길이라는 걸 깨닫고 혼자 웃었다. 대포주상절리가 보여서 들어갈까 했더니 매표소가 있어서 그냥 지나왔다. 걷는 내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주상절리 매표소 근처에는 아주 많았다.


베릿내오름에 도착해서 낑낑대며 계단을 올라갔는데 올레길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정방향을 따라가야 하는데 역방향 주황색 화살표만 보여서 좀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더 올라갈까 하다가 의자에서 쉬고 있는 분에게 올레길을 물었더니 무심하게 옆으로 쭉 가라고 했다.


감사인사 하고 걸어오다 문득 깨달았다. 해외여행을 가면 입에 달고 다니던 그 '익스큐즈미'는 어디로 간 걸까 아까 그분에게 길을 물어볼 때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했어야 하는데 대뜸 '올레길 어느 쪽으로 가나요?'하고 물었다. 음식을 입에 잔뜩 넣고 계시다 당황해서 뚱하게 길을 알려주던 모습이 생각나 미안해졌다.


걸어가는데 이상했다. 그래서 어떤 여자분에게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전망대 가는 길은 안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걸었다. 근데 그분이 갑자기 혼자 왔냐고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여행이 끝나도 고통은 끝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나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자신의 젊은 날 방황을 끝낸 건 성경 덕분이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는 길이 맞았다면 더 들어줄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니 내가 온 길이 올레길 정방향이어서 다시 그 길로 가야 했다. 내가 인사를 하자 그분은 너무도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혼자 왔다고 하니 뭔가 사연 있는 아니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보여 전도의 찬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베릿내공원 정자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간식을 먹었다. 그때 내 앞으로 여자분이 혼자서 지나갔다. 나처럼 혼자 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반가웠다.


걷다가 문득 잡생각 대마왕인 내가, 버스를 타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종점까지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던 내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걷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직 아픈 발목과 내 몸의 상태만을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이럴 수도 있는 거였구나. 수도자처럼.


8코스는 중문 관광단지를 지나는 길이라 식당이나 카페가 많았다. 점심식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걷다 보니 별다방이 있어 그곳에 들어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쉬었다.


중간을 지나 12킬로미터 정도 걷자 아픈 발목과 어제 걸은것까지 겹쳐 힘들었다. 그래서 아주 나중에나 필요하거나 필요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스틱을 꺼냈다. 양손에 스틱을 쥐고 스틱이 나를 밀어서 앞으로 보내준다는 느낌으로 걸었다. 걷는것이 조금 편해졌다. 특히 오르막 내리막에서 도움이 되었다.


예래생태공원은 자연형으로 조성된 아주 긴 길이의 공원이었는데 걷기에 좋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유채꽃만 피었지만 벚꽃과 유채가 흐르는 물과 어우러지는 계절이 오면 찾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공원부터 앞 뒤 동행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에는 아까 중간지점에서 보았던 여자분 한 명이 걷고 있었고 뒤에는 다리가 조금 불편해 보이는 남자분이 걸었다.


논짓물을 지나 종점인 대평포구까지 오니 3시가 다 되었다. 9시에 출발했으니 점심식사 포함해서 6시간이 걸린 것이다.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앞서가던 여자분과 같이 버스정류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대화를 했는데 나와 동갑이고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었다. 머나먼 제주에서 신기한 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혼자였지만 함께였던 8코스, 혼자 걷기 참 좋은 길이었다.


내일은 5코스를 걸을 계획이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