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는 시간(7)

집으로 돌아온 뒤의 낯선 기분

by 제이엘

3월 초, 조리원 창가에서 바라본 나무들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가지 끝에서 겨우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할 무렵, 내 목구멍에도 작은 아픔이 시작되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작은 신호가 며칠 후 내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복도에서 들리는 신생아들의 울음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내 아이도 그 소리들 중 하나였다. 양성. 그 두 줄이 그인 키트를 받아든 순간, 세상이 조금씩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일주일 만에 짐을 싸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다른 산모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나도 모르게 가져온 바이러스가 이 작은 생명들에게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간호사가 황급히 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리원 뒤편 작은 정원에는 동백꽃 몇 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붉은 꽃잎들이 차가운 땅 위에 흩어져 있는 모습이 왠지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전화기 너머 남편의 목소리는 멀었다. 강아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3주만, 신생아 기간만 잠시 떨어져 있자는 내 제안과 가족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그의 신념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었다. 우리는 각자 옳다고 믿는 길을 고집했다.


막달이 되자 시댁 식구들이 미리 물어왔던 것이 떠올랐다.


"강아지는 어떻게 할 거야? 다른 집에 보낼 거야?"


그때 남편은 단호하게 답했었다.


"가족인데 왜 보내요."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앞에서 그 문제가 당장 눈앞에 닥쳤다. 남편에게는 시댁 식구들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일까. 우리는 각자 옳다고 믿는 길을 고집했다.


결국 나는 홀로 결정을 내렸다. 펫시터를 통해 강아지를 호텔에 맡긴 것이다. 돌아와서 빈 집을 본 남편이 물었다.


"설마 버린 건 아니지?"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소리쳤다. 나는 절대 버릴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냥 3주만, 신생아 기간만 맡기려던 거였는데. 임시로 맡기는 거랑 버리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잖아. 하지만 남편한테는 그런 마음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내가 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도, 혼자서 처리한 것도 그를 더 의심스럽게 만든 것 같았다. 그 한 마디가 며칠 동안 가슴에 걸렸다.


집은 아기를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원래는 조리원에 한 달 있을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일주일 만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였다. 한 달이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남편은 아직 시간 있다고 미루고 미뤘다. 한 달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이 일주일로 압축되면서 모든 계획이 뒤엉켰다. 집은 아직 겨울의 먼지를 머금고 있었다.


친정에서 온 전화는 또 다른 무너짐을 알렸다. 부모님도 같은 병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의지할 곳이 하나씩 사라져갔다.


시댁에 손을 내미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어머니의 밝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기쁘다는 듯.


그들이 조리원 로비에 나타났을 때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기를 중심으로 한 작은 태양계가 만들어졌고, 나는 그 궤도 밖에 서 있었다.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뒷좌석에서 이어지는 감탄사들 사이에서 나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 풍경만 바라보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아기를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잠깐만요, 청소부터 해야겠어요."


시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차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그들을 차에 남겨두고 청소를 시작했다. 환기를 하고, 걸레를 짜고, 소독약을 뿌리며 닦아냈다. 3월 꽃샘추위의 찬바람이 집 안을 관통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한 시간여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들을 집으로 모실 수 있었다. 그동안 아기는 내가 아닌 그들의 품에서 편안해 보였다. 마치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목숨을 걸고 올라왔다"는 시누이들의 말이 반복되었다. 감사와 미안함 사이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코로나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우리 사이에 그어져 있었다. 기저귀를 갈 때도 분유을 먹일 때도 그런 말들이 계속 나왔다. 마치 내가 일부러 코로나에 걸린 것처럼.


시누이들은 미혼이라 아기를 다루는 법을 몰랐다. 수유쿠션에 눕힌 아기를 쿠션째로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을 졸였다. "조심해요"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만의 신기함과 즐거움이 있었고, 나는 그 바깥에 있었다.


시어머니는 "조심해라." 하면서도 웃고 계셨다. 나는 옆에서 조마조마했는데 정작 내가 끼어들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기 엄마인 내가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들만의 시간이었다. 웃음소리가 집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이상하게 외로웠다.


나는 침실 구석으로 물러났다. 격리라는 명목 뒤에 숨어서 그들의 축제를 지켜보았다. 거실에서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아기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쏟아지는 감탄사들. 가끔 던져지는 "괜찮니?"라는 물음은 문 너머로 스쳐가는 바람 같았다.


아무도 내가 어떤지 진짜로 묻지 않았다. 몸은 어떤지, 아픈 데는 없는지, 뭐가 필요한지도. 아기 기저귀 하나 가는 것이 내 몸 상태보다 중요해 보였다. 뭐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아기는 새로운 희망이고 나는 그냥 그 희망을 세상에 데려온 사람일 뿐이니까.


강아지가 없는 집은 더욱 적막했다. 평소라면 발소리만 들어도 달려와 반겨주던 그 온기가 사라진 자리. 남편과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겨 있었다.


밤이 되어 아기가 울면 시어머니가 먼저 일어났다. "할미가 있으니까 괜찮다"는 말 속에서 나는 조금씩 투명해져갔다. 내 역할, 내 자리, 내 존재가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이것이 내가 꿈꿔왔던 모습이었을까. 아기와 함께하는 첫 집. 하지만 내 집에서 나는 가장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집에서 내가 투명인간이 되었다. 강아지도 없고, 친정 부모님도 올 수 없고, 남편 마음도 멀어진 상태에서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같았다.


찬바람이 뼈 속까지 스며든 그날의 청소는 산후풍이라는 이름으로 내 몸에 남았다. 관절이 시리고 온 몸 근육이 굳어갔다. 산후조리의 소중함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꽃을 피우지 않은 나무들이 서 있었다. 새순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지만 꽃봉오리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꽃과 열매 사이, 그 어느 지점에서 나는 길을 잃고 서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나는 아직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떠다니고 있었다. 언제쯤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언제쯤 이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3월의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봄은 아직 멀리 있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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