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는 시간(8)

갑작스러운 몸의 신호

by 제이엘

그날 아침도 몸이 얼음 속에 잠긴 것 같았다. 3월의 꽃샘추위가 지나간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한기는 뼈 속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이불을 몇 겹 덮어도 소용없었다. 마치 내 몸이 겨울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손끝이 저리고 발가락 감각이 없어졌다.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물컵을 들려고 하면 손이 떨렸고, 일어서려고 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말이었다. 혀가 굳어있는 것처럼 발음이 어눌하게 나왔다. 생각한 것과 다른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뭐라고?" 남편이 다시 물어봤을 때 나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대답했다.


산후풍이구나, 싶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청소했던 그날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고 여겼다. 시누이들도 그렇게 말했다.


"올케, 그러게 산후조리를 제대로 안 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남의 일 보듯 하는 말투였다.


"엄마가 그러는데 산후풍은 한번 걸리면 평생 간다고 하더라고."


시어머니도 거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요즘 애들은 너무 함부로 해."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더욱 작아졌다. 내 탓이구나.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자책하며 며칠을 더 참았다.

하지만 수술 부위의 아픔은 달랐다. 제왕절개 상처 주변이 칼로 도려내는 듯했다. 누가 뱃속에서 칼로 마구 휘젓고 있는 것 같았다. 산후풍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몸 전체가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는데도 나는 계속 견디려고 했다. 아기 돌봐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데. 시댁 식구들이 있는 상황에서 아프다고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좋은 날에 초상집 분위기 내고 어쩌냐?"


시누이가 투덜거렸다. 조카를 보러 왔는데 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분위기가 안 좋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더욱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병원에 가야겠어요."


결국 나온 말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문제는 어느 병원에 갈 것인가였다. 코로나 확진자는 일반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 코로나 환자를 받는 곳은 아동병원 한 곳뿐이었다.


아동병원 응급실은 북새통이었다. 코로나 환자들을 받는 유일한 병원이다 보니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대기실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아이들 울음소리, 기침 소리, 불안해하는 목소리들이 뒤섞여 있었다.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접수 담당자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정말 꼬박 두 시간을 기다렸다. 몸은 점점 더 아파졌고, 말도 더 어눌해졌다. 대기하는 동안 다른 환자들을 보니 모두 힘들어 보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으셨어요?" 젊은 소아과 의사였는데 눈빛이 진지했다.


혈액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병원 복도를 걸어봤다. 벽에는 곰돌이, 토끼, 꽃들이 그려져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귀엽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왠지 멀어 보였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했다.


"백혈구 수치가 정상의 4-5배예요. 혈소판은 6배 높고요. 디다이머 수치는 8배 높습니다"


숫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수치들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얼마나 심각한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원인일 가능성도 있어요.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신중하게 말했다.


"저희 병원에서는 한계가 있어요. 격리 시설이 있으면서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연결해드릴게요."


그 의사 선생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동병원이지만 다 큰 어른도 받아주고, 다른 병원으로 연결까지 해주는 마음이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구급차가 왔다. 집 앞에 서 있는 하얀 차량을 보니 일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게 느껴졌다. 구급차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가 우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의 눈물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순간 그는 울고 있었다. 무력함 앞에서.


그렇게 우리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눈물이 말랐다. 내 눈물도 말랐다. 우리 사이에 있던 무언가도 함께.


구급차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조리원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모든 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변해버린 걸까.


창밖으로 스쳐가는 봄 풍경을 보며 나는 무사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직 몰랐다. 정말 힘든 건 이제 시작이라는 걸.


격리 병실은 넓었다. 혼자만의 공간. 창문 너머로 보이는 봄 풍경이 유리창 저편의 일 같았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 나무들, 따뜻한 햇살, 산책하는 사람들. 모든 게 다른 세상의 일 같았다.


간호사들은 방호복을 입고 들어왔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목소리로만 사람을 알아봐야 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몇 시간 후, 들었다. 뇌경색.


머릿속에서 그 두 글자가 맴돌았다.


"젊은 나이에도 생길 수 있어요. 출산 직후에는 혈액 상태가 변하면서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혈액 응고 기능이 증가하거든요. 그게 때로는 혈전을 만들어서 뇌혈관을 막을 수 있어요.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출산 자체가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는 거죠."


그제서야 알았다. 시누이들이 산후조리 탓이라고 했던 말들, 시어머니가 내 탓이라고 했던 것들. 모두 틀렸다는 걸. 이건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몸의 신호들이 이해되었다. 온 몸의 차가움, 근육 마비, 어눌한 발음, 극심한 통증. 모든 것이 경고였던 것이다.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절박한 신호였다.


"다행히 빨리 발견했어요. 치료하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희망처럼 들렸다.


격리 병실 창가에서 바라본 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무들은 새순을 틀고 있었고, 하늘은 맑았다. 하지만 나는 그 봄 속에 있으면서도 겨울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꽃과 열매 사이 어디쯤에서 예상치 못한 길을 걷고 있었다.


시누이의 "좋은 날에 초상집 분위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정말 초상집이 될 뻔했구나.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그제서야 깨달았다. 몸의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때로는 인생이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실이 가장 큰 위로였다.


격리 병실에서 보낸 그 며칠 동안, 나는 통제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까. 산후조리를 완벽하게 하면,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하면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몸은 그런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 뇌 속 미세한 신호들, 호르몬의 변화.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마치 바람이나 비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고 내리듯이.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시누이들의 차가운 말들도, 예상치 못한 병도, 갑작스러운 고통도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창밖의 봄은 그런 나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넸다. 나무들도 언제 꽃이 필지, 언제 열매를 맺을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라날 뿐이다. 꽃과 열매 사이에서, 나도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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