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으로 가는 길
병원에서 퇴원 허가가 나던 날, 남편과 함께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친정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기차 좌석에 앉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내가, 지금은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게. 엄격하던 엄마에게서 도망치듯 결혼을 선택했던 그 내가.
남편은 옆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우리 사이엔 뭔가 벽이 생긴 것 같았다. 강아지 일로 생긴 작은 틈이 내 병으로 더 벌어진 것 같았다. "괜찮아?" 가끔 물어보지만 형식적이었다. 나도 "응, 괜찮아" 하지만 둘 다 거짓말인 걸 알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새순이 올라온 들판이 지나가고, 작은 마을들이 지나갔다. 서울이 멀어져갔다. 내가 만든 새로운 삶이, 남편과 함께한 집이, 아기와 보낸 짧은 시간들이 점점 작아져갔다. 돌아갈 곳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그곳이 숨 막혔던 곳이었어도.
돌아갈 곳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그곳이 아무리 숨 막혔던 곳이었어도, 아무리 도망치고 싶었던 곳이었어도. 마치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나는 내가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참 이상한 존재이다. 새장에서 나온 새처럼 자유를 찾아 나갔다가 결국 다시 돌아올 곳을 찾듯이, 우리는 벗어나고 싶었던 곳을 그리워하고, 떠나고 싶었던 사람의 품을 찾게 된다.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멀어졌던 거리가 상처라는 이름으로 다시 가까워진다.
남편은 옆자리에서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투명하지만 단단한,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지만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그런 벽. 강아지 일로 생긴 작은 균열이 병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그가 가끔씩 물어봤지만 그 말은 공중에 떠다니다가 사라져버렸다. 나도 괜찮다고 답했지만 그 말 역시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기차가 역에 도착했다. 아빠가 마중 나와 계셨다. 햇살 아래 서 있는 아빠 모습이 어린 시절과 겹쳐졌다. 변하지 않은 게 있구나 싶었다. 무조건적인 사랑, 그냥 존재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아빠 차에 올라탔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왔다.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었다.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댐이 무너지듯,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너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우리가 서로 전부였던 그때. 그의 웃음이 나의 햇살이었고, 내 눈물이 그의 비였던 그때. 지금은 뭘까. 그는 나에게 뭘까. 나는 그에게 뭘까.
반짝이던 너의 예쁜 눈망울에 수많은 별이 되어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
가사가 가슴을 찔렀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지게 된 건. 나는 여전히 그에게 기대고 싶은데, 그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것처럼.
남편은 조수석에 앉아서 창밖만 보고 있었다. 내 눈물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병원에 실려가던 날 그가 흘린 마지막 눈물 이후로 그의 감정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알았다. 이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었다. 몸이 아파서도, 병 때문도 아니었다. 뭔가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어둠 같은 것이었다. 모든 게 의미 없어 보이고, 모든 게 슬퍼 보이고, 나 자신조차 사라지고 싶은 그런 기분.
세상이 회색으로 보였다. 창밖 풍경도, 파란 하늘도, 아빠의 따뜻한 미소도 모두 색이 바랜 것 같았다. 나는 그때 몰랐다. 이게 산후우울의 신호탄이라는 걸. 앞으로 나를 더 깊은 터널로 끌어들일 시작점이라는 것을.
차가 계속 달렸다. 어린 시절의 길을 따라. 집이라고 부르던 곳에서 멀어지고, 집이라고 불러야 할 곳으로 가면서.
진짜 '집'이란 뭘까. 내가 만든 곳일까, 나를 만든 곳일까. 우리는 평생 집을 찾아 헤맨다. 마음이 편안한 곳,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어쩌면 집이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집조차 우리를 완전히 채워주지는 못한다. 사람은 원래 뭔가 부족한 존재니까. 늘 무언가 찾고 있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고 살아간다.
인간은 참 역설적이다. 벗어나고 싶었던 곳이 마지막 안식처가 되고, 사랑했던 사람이 가장 먼 사람이 되고,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가장 슬픈 감정이 찾아온다. 우리는 원을 그리며 산다.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면서,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얻으면서.
귀환. 그건 그냥 장소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과거의 나로, 어린 시절의 약함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로 되돌아가는 거였다. 나는 다시 엄마의 딸이 되어야 했다. 어른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아픈 딸로.
또 다른 역설이 있다. 우리는 성장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시작된 곳으로 돌아간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같은 자리 같지만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 같은 방, 같은 부모님인데 내가 달라져 있다. 그 차이가 성장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상처가 쌓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독립을 어른이 되는 거라고 말하지만, 정말 독립이 가능할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살면서도 계속 기대고, 죽을 때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 완전한 독립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의존과 독립 사이의 균형, 받는 것과 주는 것 사이의 조화인 것 같다.
아기는 이미 친정 부모님이 데리고 가서 돌보고 계셨다.나는 빈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엄마가 됐지만 아기 없이. 보호해야 할 존재가 있지만 보호할 힘도 없이.
집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엄마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그 뒤로 아빠가 아기를 안고 나오셨다. 내 아이가 할아버지 품에서 편안해 보였다.
그 순간 또 눈물이 났다. 도망치고 싶었던 그 품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곳이었다. 내 아이조차 나보다 이곳에 더 잘 맞는 것 같았다.
아기가 있는 나의 친정, 엄마아빠가 있는 나의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될 거다. 몸보다 더 힘든 마음의 회복이, 관계의 회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거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된 나는 아기 없이 혼자 이 여행을 시작해야 했다.
집 앞마당에 심은 감나무가 보였다. 연한 새잎이 돋아나고 잇었다.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은 봄의 시작, 꽃과 열매 사이에서 나도 새롭게 시작하고 있었다. 뭐가 될지 모르지만, 여기서라면 천천히 자라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인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