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는 시간(6)

새벽 두 시의 눈물

by 제이엘


새벽이 되면 산후조리원은 더욱 고요해졌다. 복도에는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다른 방에서도 조용했다. 모두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만 잠들지 못했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다.


처음엔 단순히 피곤해서라고 생각했다. 낮에 아기 돌보느라 지쳐서 그런 거라고. 근데 며칠 지나니까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건 그냥 피로 탓이 아니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눈물이 잘 안 나는 사람이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울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는 너무 냉정하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사소한 일에도 눈물부터 났다. 아기가 젖을 잘 안 먹어도, 간병인 선생님이 한마디만 해도 금세 울컥했다.


"왜 자꾸 우세요? 몸이 어디 아프세요?"


간병인 아주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모르겠었다. 왜 우는지, 뭐가 슬픈지, 뭐가 힘든지. 그냥 눈물이 나왔다. 마치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처럼.


밤이 되면 더 심했다. 신생아실 소독 시간인 아침과 저녁 한 시간씩 외 시간에도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기를 데려오지 않았다. 아기를 볼 힘이 없었다.


하루 종일 방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아기를 데려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기를 보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아니면 내가 아기를 제대로 돌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기는 신생아실에 있고, 남편은 오지 않고, 나만 텅 빈 방에 남겨졌다.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말할 사람도 없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내 마음만 시끄러웠다.


모유를 줘야 하는 시간이 되어도 직접 수유를 하지 않고 유축을 해서 건네줬다. 예전에 생각했던 모성애는 어디 간 걸까? 아기를 보면 사랑이 막 샘솟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대신 죄책감만 밀려왔다.


"아가야 왜 울어? 엄마가 뭘 잘못했어? 엄마도 처음이라 모르겠어."


아기에게 말을 걸면서도 내가 먼저 울고 있었다. 아기보다 내가 더 많이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엄마가 맞나 싶어서, 너무 막막해서.


옆 방에서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와서 아내와 아기를 돌보는 소리, 행복한 대화 소리,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의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면 더 외로웠다. 나는 왜 혼자일까,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어느 날 밤, 젖을 먹이려고 신생아실에 갔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손에 식은땀이 났다.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혹시 아기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병이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괜찮으실 거예요. 처음 엄마들은 다 그래요. 저도 첫째 낳고 많이 힘들었어요."


밤 근무하던 간병인 선생님이 위로해줬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도 나처럼 힘들까? 다른 엄마들도 이렇게 불안하고 슬플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았다. 사람들이 있고, 할 일이 있고, 정신없이 바쁘니까. 선생님들이 아기도 봐주고, 밥도 챙겨주고, 이런저런 얘기도 해주니까. 근데 밤이 되면 완전히 달랐다.


혼자 남겨진 시간, 고요한 시간,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이 되면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외로움, 불안함, 무력감, 죄책감. 이런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를 덮쳤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아기를 가지기 전에는 괜찮았는데. 임신할 때도 이런 감정은 없었는데. 출산하고 나니까 갑자기 모든 게 변했다. 내 감정도, 내 몸도, 내 하루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문득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들었던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쁨도, 슬픔도, 힘든 시간도 모두 때가 있다고.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말인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보니까 새삼 와닿았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이 있으면, 그에 따른 어둠도 당연히 있는 것일까? 모든 것에는 음과 양이 있다는 게 이런 뜻일까?


아기를 낳는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일이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내 모든 것을 아기에게 주는 일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나에게는 빈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힘든 걸까?


"남편분은 언제 오세요?"


간병인 선생님이 물었다. 다른 방 남편들은 매일 오는데, 우리 방만 조용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바쁜가 봐요. 회사 일이 많대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마음속으론 알고 있었다.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전화도 별로 안 온다는 걸. 나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밥도 먹기 싫고, 씻기도 싫고, 스킨케어도 하기 싫었다. 심지어 아기를 봐도 별로 감정이 없었다. 이상했다. 내 아이인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


대신 죄책감만 밀려왔다. 이런 엄마를 둔 아기가 불쌍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행복하게 웃으면서 아기를 돌보지 못하는 내가 미안했다. 아기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도 미안했다.


"혹시 산후우울증일 수도 있어요."


베테랑 간호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산후우울증.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내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산모들이 겪는 일이에요. 부끄러워할 일 아니에요."


하지만 부끄러웠다. 정신과에 간다는 게 부끄러웠고,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혼자 가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남편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을 게 뻔했고, 이해하지도 못할 게 뻔했다.


밤마다 반복되는 눈물. 이유 없는 불안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 아기를 봐도 느껴지지 않는 사랑. 이런 게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엄마에게 자란 아기는 괜찮을까? 걱정이 걱정을 낳았다.


"미안해, 엄마가 이상해졌나 봐. 엄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기에게 말하면서 더 많이 울었다. 아기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맑은 눈을 보니까 더 미안했다. 이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이런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날 밤, 처음으로 남편에게 솔직하게 전화했다.


"나 요즘 너무 힘들어. 계속 울게 되고, 불안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 뭐가 힘들어? 다 해주는데."

"그게 아니야. 마음이 이상해. 산후우울증인 것 같아."

"에이, 그런 거 아닐 거야. 좀 예민해진 거지. 시간 지나면 나아질 거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별일 아니라고,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외로웠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다고 하던데?"


남편의 그 말이 가장 아팠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다니. 나만 이상한 거라니. 나만 유독 약한 거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깊은 구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새벽 두 시, 또다시 혼자 울고 있었다. 아기는 신생아실에 있고, 세상은 조용했다. 이 고요함 속에서 내 마음만 시끄러웠다. 불안하고, 슬프고, 외롭고, 막막했다.


그러던 중 문득 창밖의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였는데, 그 나무를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저 나무도 지금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오면 다시 새순이 날 거다. 계절이 바뀌면 다시 살아날 거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면 언젠가는 나아질 때도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어둠도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희망 같은 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이 감정들을 혼자 견뎌낼 수 없다는 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부끄럽고 창피해도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걸.


산후조리원에서 나간 후에도 나는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라고, 이건 그냥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라고. 하지만 새벽 두 시의 눈물은 계속되었고, 나는 여전히 그것을 혼자 견디려 했다.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건 내 의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나를 위해서도, 아기를 위해서도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정신과에 가기로 결심했다. 산후우울증 검사를 받기로. 혼자서라도, 남편이 이해 못 해도 내가 먼저 나를 도와야 했다.


새벽 두 시의 눈물은 나에게 신호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 하지만 그 신호를 1년 동안 무시했다. 눈물이 나쁜 게 아니라, 그 눈물을 1년 동안 혼자 견디려 한 게 나쁜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1년의 시간도 필요했을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완전히 알게 해준 시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해준 시간. 산후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무서웠지만, 그것도 하나의 질병이고 치료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새벽 두 시의 눈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1년이 걸렸지만, 나를 돌보기 시작하는 시작, 도움을 받기 시작하는 시작. 꽃잎이 떨어져도 그 자리에서 새로운 힘이 자라나듯, 그 긴 시간의 눈물 속에서도 치유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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