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는 시간(5)

옆 방 산모의 행복

by 제이엘


산후조리원 복도는 늘 조용했다. 신생아들의 작은 울음소리만이 가끔 들려올 뿐이었다. 그런데 옆 방에서는 다른 소리가 났다. 웃음소리였다.


처음엔 반가웠다. 이 썰렁한 곳에서 누구라도 웃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근데 며칠 지나니까 좀 달라졌다. 그 소리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매일 오후 3시쯤 되면 옆 방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인가 보다. 낮은 목소리로 뭔가 얘기하고, 여자가 킬킬거리며 웃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가끔 "어디 아픈 데 없어?" "오늘 뭐 먹고 싶어?" 같은 말들이 벽 너머로 새어나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봤다. 우리 남편은 어디 있을까? 또 강아지 산책 나갔나? 아니면 회사 일 때문에 못 온다고 할까? 핸드폰을 봐도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회사에서 급한 일이 생겼어. 조금 이따가 전화할게"


남편에게서 오는 메시지는 늘 이런 식이었다. 급한 일, 중요한 미팅, 못 빠지는 회식. 이런 메시지들을 읽으면서 점점 확실해졌다. 내가 그 사람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는 게.


옆 방 남편은 정말 매일 왔다. 아침에 출근 전에 잠깐 들르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와서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저녁엔 어김없이 나타나서 한두 시간씩 있었다. 그 시간 내내 옆 방에서는 계속 대화 소리가 들렸다.


"오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아기가 오늘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알아?"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 아기가 제일 예쁘다고 하더라."


별거 아닌 일상 얘기들이었다. 근데 그런 평범한 대화가 나한테는 완전 사치처럼 느껴졌다. 남편과 언제 마지막으로 이런 소소한 얘기를 했나 싶었다. 임신할 때도 이런 대화가 있었나?


남편은 산후조리원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전화 통화로만 안부를 물었다. 통화할 때마다 뭔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예전 목소리가 아니었다. "괜찮아?"라고 물으면 "응, 괜찮아. 요즘 일이 많아서 정신없어"라고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활기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 오늘 산후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해."

"아, 그래? 미안, 나는 회사 일 때문에 못 갈 것 같아."


산후 일주일 뒤 검진 날이었다. 중요한 검사라고 했는데도 남편은 못 온다고 했다. 회사 일이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대기실에서 다른 산모들을 봤다. 거의 다 남편이나 가족과 함께 와 있었다. 어떤 남편은 아내 가방을 들어주고, 어떤 남편은 검진 결과를 같이 들으려고 진료실까지 따라갔다. 나는 혼자 앉아서 그런 모습들을 봤다.


검진 결과는 다행히 좋았다. 의사가 "회복이 잘 되고 있다"고 했다. 근데 이 좋은 소식을 같이 기뻐할 사람이 옆에 없었다. 남편한테 말해봤자 "아, 그래? 다행이네" 하고 끝일 게 뻔했다.


어느 날 복도에서 옆 방 부부와 마주쳤다. 남편이 아내 팔을 살짝 잡아주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정했다.


"조심해, 천천히 걸어."

"괜찮아, 많이 나아졌어."


그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서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감정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질투였다. 확실한 질투!


왜 저 사람한테는 매일 와주는 남편이 있을까? 왜 저 사람은 여기서도 웃을 수 있을까? 왜 나는 혼자서 이 시간을 견뎌야 하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생각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 변화가 더 심해졌다. 전화할 때마다 말수가 확 줄어 있었고, 자주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웃는 일도 거의 없어진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어?" 물으면 "아니야, 괜찮아" 했는데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요즘 왜 그래? 뭔가 이상해."

"그냥 피곤해. 회사 일이 힘들어서."


근데 그것만으론 설명이 안 되는 게 있었다. 목소리도 힘이 없었고, 예전에 보이던 활기가 완전 사라진 것 같았다. 마치 어둠 속에 갇힌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가 남편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너무 초라했다. 남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내 모습이 너무 작아 보였다. 사람마다 다른 상황에 있다는 거 알면서도, 비교하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도 마음은 그렇게 안 됐다.


밤에는 더 심했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대화 소리. 남편이 늦게까지 있으면서 아내와 아기를 돌보는 소리. 나는 어둠 속에서 혼자 울었다. 서러운 건지 외로운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어느 날 식사를 전해주러 온 아주머니가 말했다.


"옆 방 남편분 정말 좋으시네요. 매일 오셔서 아내분을 챙기시고."

"네, 그러게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론 쓴웃음이 나왔다. 좋은 남편 기준이 이렇게 낮아도 되나 싶었다. 매일 오는 거, 아내를 챙기는 거, 이런 당연한 일들이 칭찬받을 일이 되는 현실이 씁쓸했다.


며칠 후 옆 방 산모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이번에는 웬일인지 혼자 있었다.


"남편분은 어디 가셨어요?"

"아, 잠깐 회사에 다녀온다고 했어요. 금방 올 거예요."


그 사람 대답에는 의심이 전혀 없었다. 남편이 금방 올 거라는 확신, 오늘도 와줄 거라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나는 그런 확신을 가져본 적이 있나 생각해봤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부러워한 건 단순히 자주 오는 남편이 아니었다. 그 확신이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확신,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그게 나에게는 없었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이제는 다르게 들렸다. 여전히 부러웠지만, 더 이상 질투나 원망은 아니었다. 그냥 저런 관계도 있구나 하는 담담한 인정이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현실적 수용이기도 했다.


조기 퇴소 전날, 옆 방 가족이 먼저 나가는 걸 봤다. 남편이 큰 가방 두 개를 들고, 아내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세 명이 같이 엘리베이터로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한테는 저 사람들 행복이 있고, 나한테는 내 방식이 있을 거라고.


그 후 옆 방은 텅 비었다. 더 이상 웃음소리도, 대화 소리도 안 들렸다. 이상하게 그 조용함이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이 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다 의미가 있었다. 남편 회사 일이 나보다 중요했던 현실, 혼자 받아야 했던 산후 검진들, 그리고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남편 우울증. 모든 게 앞으로 올 시간들을 준비시켜주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 질투는 필요한 감정이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한테 뭐가 부족한지 알게 해준 감정이었다. 단순히 남편이 자주 와주길 바란 게 아니라,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원했던 거였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사랑받을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매일 찾아오는 남편이 있고, 어떤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사랑받는다. 중요한 건 그 사랑을 알아보는 눈을 갖는 거였다. 그리고 때로는 그 사랑이 없을 때 혼자서도 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거였다.


옆 방 산모의 행복을 부러워했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고맙다. 그 질투 덕분에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사랑에도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는 걸, 때로는 사랑이 부족할 때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꽃잎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히듯, 그 외로움과 질투도 나한테는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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