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손길들
산후조리원 복도에는 항상 묘한 정적이 흘렀다. 가끔 신생아 울음소리가 새어나올 뿐이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수많은 낯선 손길들을 만나야 했다.
마사지실에 처음 들어간 날을 잊을 수 없다. 자주색 유니폼을 입은 실장님이 나를 쭉 훑어보며 물었다.
"자연분만이죠?"
"아뇨, 제왕절개요."
실장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뭔가 실망스러운 걸 확인한 표정이었다. 마스크 위로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 그래요? 수술도 힘들었겠지만 자연분만보다는 못하죠, 호호."
가슴이 철렁했다. 못하다니. 10시간 넘게 아파하다가 아기 심박수 떨어져서 수술실로 뛰어들어간 게 못한 거라고? 수술대 위에서 벌벌 떨던 내가 뭔가 부족했다는 뜻인가?
"응급수술이었거든요."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기가 위험해서 어쩔 수 없이... 의사가 지금 안 하면 큰일 난다고 해서..."
"아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었네요. 그래도 자연분만이 회복은 빨라요."
실장님이 좀 부드러워진 것 같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왜 내가 변명해야 하지? 응급상황 아니었으면 게으르고 자격 없는 산모 취급받는 건가?
그 후로 마사지받을 때마다 그 말이 맴돌았다. '자연분만보다는 못하죠.' 그 한마디가 어디선가 아렸다. 자연스럽지 못한 엄마, 뭔가 모자란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 나도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임신하면서 계속 상상한 건 자연스럽게 낳는 거였다. 출산계획서에도 자연분만이라고 써놨고, 남편이랑 라마즈 호흡법 연습도 했다. 근데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촉진제를 맞으면서 진통해도 아기가 안 나왔다. 자궁문도 더 안 열리고, 아기 심박수도 떨어졌다. 정말 아이러니했다. 임신 막달 두 달 동안은 조기진통 때문에 라보파 주사를 맞으며 병원에 누워있었다. 그때는 너무 일찍 나온다고 막았는데, 정작 나올 때가 되니까 안 나오다니.
수술대에서 울었다. 계획이랑 너무 달라서 실망스럽고, 아기 걱정되고, 괜히 죄책감도 들었다. 마취되기 전까지 눈물이 안 멈췄다. 남편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혼자였다.
모유수유 상담실에서도 비슷했다. 경력 많아 보이는 간호사가 차트를 보면서 물었다.
"완모 하실 거죠? 요즘은 다들 그렇게 하시는데요."
"바로 분유 먹일 거예요."
간호사 손이 멈췄다. 펜 들고 나를 보는 눈빛이 차가워졌다.
"모유가 얼마나 좋은지 아시죠? 면역력도 그렇고 영양도 그렇고 애착형성도... 초유만으로도 부족해요. 최소 6개월은 해야 하는데."
길고 긴 잔소리가 시작됐다. 모유수유가 얼마나 좋은지, 분유는 어떻게 안 좋은지, 다른 엄마들은 다 어떻게 하는지. 마치 내가 아기한테 해 끼치려는 나쁜 엄마인 것 같았다.
근데 나름 이유가 있었다. 일단 내 몸 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엄마가 되는 게 아기한테도 더 좋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왜 내 선택은 인정 안 해주는 거지?
"다시 생각해보세요. 엄마들 대부분 모유수유 해요. 아기를 위해서라도요."
또 그 말이었다. 나는 '대부분 엄마들'이랑 다른, 뭔가 잘못된 선택하는 엄마라는 기분이 들었다. 아기를 덜 사랑하는 엄마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결국 타협했다. 초유만 먹여보기로 했다. 근데 이틀 지나니까 젖몸살이 왔다.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고 열이 확 올랐다. 옷깃만 스쳐도 아플 정도였다.
"마사지 받으러 와야겠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이 정도면 꽤 심하네요."
마사지실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옷 벗고 침대에 누워야 한다는 게, 모르는 사람이 내 몸 만진다는 게 싫었다. 그래도 아픔은 참을 수 없었다.
"많이 부었네요. 아팠을 텐데 왜 이제 호출했어요?"
마사지하는 사람이 담담하게 말하면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천장만 바라봤다. 아픔과 수치심을 동시에 견뎌야 했다. 내 몸이 더 이상 내 것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흔하죠. 근데 대부분 참더라고요."
몇 번 마사지 받으면서 깨달았다. 여기서는 모든 게 당연한 일이구나. 산모 몸 만지는 것도,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도, 선택을 강요하는 것도. 아기 낳는 순간 여자 몸이랑 선택권이 공공재가 되는 것 같았다.
TV에서 보던 감동적인 출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쁜 음악도, 멋진 조명도, 따뜻한 포옹도 없었다. 그냥 아프고, 힘들고, 때로는 창피하기까지 한 현실만 있었다. 드라마처럼 감동적이지 않고 그냥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코로나가 모든 걸 더 차갑게 만들었다. 면회 금지에 산모들끼리도 거리 두어야 했다. 복도에서 만나도 고개만 끄덕이고, 진짜 대화는 못했다.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까 표정도 잘 안 보였다.
원래 있던 프로그램들도 다 취소됐다. 산후요가도, 육아교육도, 산모 모임도. 다른 엄마들이랑 얘기하고, 위로받고, 같이 웃을 기회가 다 사라졌다. 각자 방에서 조용히 지내야만 했다.
가끔 복도에서 다른 산모를 만나면 궁금했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외로울까? 이 사람들도 모든 게 낯설고 힘들까?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 혹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까? 근데 물어볼 수도 없었다.
어느 날 오후, 갑자기 간호사가 왔다.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어요."
머리가 새하얘졌다. 어디서 걸렸는지 모르겠다. 마스크도 잘 쓰고 손소독도 열심히 했는데. 면회객도 없었고 방에만 있었는데 어떻게? 아기는 괜찮나, 다른 산모들한테 피해 준 건 아닌가, 머리가 복잡했다.
"다행히 아기는 음성이에요. 근데 조기퇴소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조기퇴소라니. 원래 계획보다 일주일이나 빨랐다. 아직 몸도 다 안 나았는데, 집에서 아기 돌볼 자신도 없는데. 근데 어쩔 수 없었다.
짐을 싸면서 생각했다. 여기서 뭘 얻었나? 충분한 휴식도, 제대로 된 교육도, 다른 엄마들과의 교감도 없이 그냥 시간만 보낸 것 같았다. 오히려 상처만 늘어난 것 같았다. 내가 부족한 엄마라는 느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만 커진 것 같았다.
퇴소 시간이 되자 엘리베이터 기다리면서 복도를 둘러봤다. 며칠 전까지 내가 있던 곳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만났던 손길들이 스쳐갔다. 차갑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하기도 했던, 하지만 대부분은 낯선 그 손길들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기 안고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들어올 때와 많이 달라 보였다. 더 야위고, 더 위축되어 보였다. 근데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제부터는 정말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길에서 천천히 배웠다. 엄마 된다는 게 정해진 모습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제왕절개든 자연분만이든, 모유수유든 분유수유든, 그게 엄마 가치를 정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중요한 건 아이 향한 사랑이고, 그 사랑 표현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문득 대학 때 읽었던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 스며든 보이지 않는 권력에 대한 얘기 말이다. 감시와 처벌이 물리적 강제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스며든 규범으로 이뤄진다는 내용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내가 겪은 게 바로 그거였다. 아무도 강제로 자연분만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물리적으로 억압하지 않았다. 근데 '자연분만이 더 좋다', '모유수유가 당연하다'는 보이지 않는 규범들이 공기처럼 퍼져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었다.
마사지 실장님이 한 "자연분만보다는 못하죠, 호호."라는 말 한마디가 내 안에 죄책감을 심어놨다. 그 죄책감은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든 거였다. 푸코가 말한 '규율권력'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근데 깨달음은 자유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 보이지 않는 틀을 아는 순간, 나는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들이 만든 '좋은 엄마' 기준이 아니라, 내가 정하는 '좋은 엄마'가 되기로 선택할 수 있었다.
낯선 손길들이 남긴 상처들은 시간 지나면서 조금씩 아물었다. 그 자리에는 좀 더 단단해진 나만의 엄마됨이 자리잡았다. 누군가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는, 누군가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직 내 아이만을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지금은 그때 낯선 손길들에게도 고맙다. 비록 차가웠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더 분명해질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내 아이에게 뭐가 진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상처로도 우리는 자란다. 꽃잎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