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는 시간(3)

사진 한 장의 무게

by 제이엘

친정집 햇살이 드는 창가에서 아기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산후풍으로 퉁퉁 부은 내 얼굴, 뇌경색 후유증으로 어색하게 굳은 미소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순간만큼은 꽃이 만개했을 때처럼 환하다. 그때는 몰랐다. 이 사진 한 장이 얼마나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지.


코로나가 모든 걸 뒤틀어놓았다. 산후조리원을 일찍 나와야 했고 몸은 갈수록 이상해졌다. 며칠 뒤 응급실에서 혈전으로 인한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서른세살의 나이에 중풍이라니. 산후풍까지 겹치니 걸음마저 불안했다. 남편은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나는 갓 피어난 꽃이 찬바람에 떨리듯 혼자 견뎌내야 했다.


결국 친정으로 내려왔다. 엄마 품으로. 그리고 나의 아기가 있는 곳으로.


친정에서의 하루하루는 고되면서도 애틋했다. 산후풍으로 무릎이 시려서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아기를 안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런데도 아기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처음 방긋 웃을 때, 고개를 가누려 애쓸 때, 뒤집기를 시도할 때마다 흔들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사진 찍을 힘은 있나 보네."


메신저 단체방에 아기 사진을 올릴 때마다 시어머니에게서 날아오는 메시지였다. 마치 얇은 칼날 같은 말이었다. 뇌경색으로 손끝이 저리고, 산후풍으로 온몸이 욱신거리는데도 사진을 찍는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 그렇게 내 아픔을 의심 받았다.


"그렇게 아프다면서 사진은 또 언제 찍었어?"


시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에 남편이 친정에 내려올 때마다 전해오는 말들이었다. 마치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듯한 시선들이 버거웠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아픔을 참아야 했는지.


정말 억울했다.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누고 싶어 올린 사진이 도리어 간섭의 빌미가 되어버렸다. 내가 직접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이 큰 상황에서 사진을 찍는 것만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었는데 그마저도 비난받아야 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건, 아이의 성장은 물 흐르는 것처럼 빠르고, 한번 지나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배냇짓, 첫 옹알이, 첫 뒤집기... 이 모든 순간들은 꽃잎처럼 떨어져 버리면 영영 사라진다.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건 사진을 올릴 때마다 쏟아지는 잔소리들이었다.


"분유를 좀 더 줘라."

"아기 얼굴이 왜 사진마다 다르게 나와?"

"옷을 저렇게 입히지 말고 이렇게 입혀."

"태지 좀 빡빡 벗겨봐라. 우리 때는 다 그렇게 키웠어."


친정에서 친정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돌봐주고 계시는데도 마치 자신들만의 손주인 양 모든 걸 지시하려 했다. 사진 속 아기를 보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모습이 참 우스웠다. 정작 기저귀 한 번 갈아주지 않으면서.


나는 그저 아기의 소중한 순간들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주중에 혼자 있는 남편에게도 아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시댁 식구들도 손주를 그리워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따뜻한 관심이 아니라 차가운 비판뿐이었다.


아픈 몸으로도 찍었던 그 사진들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직접 완벽하게 돌보지 못하는 미안함, 아기의 성장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멀리 있는 가족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 모든 게 그 작은 화면 안에 담겨 있었다.


결국 지쳤다. 사진을 올릴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시댁 단체방에는 사진을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소중한 순간들을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독이 되어버린 상황이 너무 슬펐다.


그러자 이번엔 남편을 통해 압박이 들어왔다.


"아기 사진 좀 보내달라고 해."


남편도 주말에만 친정에 와서 아기를 보는 처지라 평일엔 나를 통해서만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보내지 않으면 남편도 시댁에 손주 소식을 전할 길이 없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사진 찍을 힘이 있다며 비꼬면서도 정작 그 사진들은 간절히 원했다. 내 아픔은 믿지 않으면서도 사진 속 아기 모습은 보고 싶어했다. 그것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이래라저래라 간섭까지 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내가 아기를 사랑하는 방식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직접 모든 것을 돌보지 못해도, 완벽한 육아를 하지 못해도 나름대로 아기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찍는 사진 한 장도, 아기의 성장을 기록하려는 마음도 내 나름의 사랑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한가한 취미나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나 보다.


지금 그때 사진들을 다시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손목이 아파 흔들린 사진들, 각도가 어색한 사진들... 하지만 그 모든 사진에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꽃이 져도 열매를 맺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하듯, 아픈 몸으로도 그 순간들을 지켜내려 했던 간절함이 담겨있다.


결국 깨달았다. 사진 한 장에도 이렇게 많은 감정과 상황이 얽혀있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완벽한 조건에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아픈 손으로 찍은 흔들린 사진에도, 멀리서나마 성장을 지켜보려는 마음에도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비난받으면서도 사진을 찍은 게 잘못이 아니라고. 그것도 아기를 사랑하는 소중한 방법이었다고. 꽃잎이 떨어져도 그 자리에는 분명 열매가 자라나고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아기가 자라서 그 사진들을 보게 될 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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