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선택의 기로
한 계절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경계선에서,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꽃잎이 하나둘 떨어지며 작은 열매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처럼, 변한 것은 남편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남편이 아기를 제대로 안지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떨어뜨릴까 봐 무서워"라며 아예 안으려 하지 않았다. 억지로 안겨주면 팔을 뻣뻣하게 굳힌 채 아기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안았다. 마치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사람처럼 온몸이 경직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자연스럽게 안고 뽀뽀까지 해주곤 했다.
남편이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테이프를 비뚤게 붙이고는 "이렇게 하는 거 맞지?"라고 물어보는 그를 보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기 엉덩이가 반쯤 드러난 채로 울고 있는데도 왜 우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다시 채워주면 "역시 엄마가 하니까 다르네"라며, 마치 내게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출산 당일은 더욱 황당했다. 내 동생이 강아지를 맡으러 와줬는데도 굳이 집에 가서 직접 산책을 시키고 와야 한다는 그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가 아기를 낳고 누워 있는데 강아지 산책이 그렇게 급한 일인가 싶었다. 그때 이 사람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아기가 울면서 팔을 뻗을 때도 "뭘 원하는 거야?"하며 당황해했다. 안아달라는 신호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안아주면 바로 조용해지니까 "정말 신기하다"며 마치 내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말했다. 아이와 소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산후우울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내가 울고 있으면 "왜 또 우는 거야?"라며 마치 내가 이상한 사람인 양 바라봤다. "다른 애 낳은 여자들은 안 그런다던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이 사람과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산후우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출산 후 시댁의 간섭이 본격화되면서 나와 시댁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꽃이 열매를 품고 난 뒤 겪어야 하는 거센 바람처럼, 남편은 그 중재가 버거워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내 산후우울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정작 자기 우울증은 "너무 힘들다"며 호소했다.
갑자기 코로나에 걸려 산후조리원을 조기퇴소해야 하는 사건이 있었다. 집에 온 며칠 뒤 아무래도 몸이 이상해서 근처 병원에 갔더니 혈전이 생겨 뇌경색이 왔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합병증이라고 의사가 설명해줬다. 이때 내 혈소판 수치는 86만이었고 디다이머 수치는 3.83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나와 시댁 사이의 갈등 중재에 내 병까지 겹치니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잠만 자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분노조절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눈빛은 멍하기만 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한 상태에서 뇌경색까지 생기고, 남편은 우울증으로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친정에 아기를 맡겼다. 열매를 품은 꽃이 시련 속에서도 그 생명을 지켜내듯, 나는 내 몸이 버거워도 아이만큼은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했다. 나도 산후조리를 핑계로 친정으로 피신했다. 남편은 주말마다 나와 아이를 보러 오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기와 내가 친정에 가고 나자 남편이 한결 편해 보였다. 책임감에서 벗어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이 없는 주중에는 예전처럼 강아지만 돌보면 되니까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 사람에게 아빠란 과연 무엇일까 싶었다.
주말에 처가에 올 때마다 남편의 어색함은 여전했다. 일주일 만에 만나는 아기가 낯선지 울면 당황하고, 기저귀를 갈 때마다 나를 불렀다. 마치 가끔 보러 오는 삼촌 같았다. 여전히 아기를 제대로 안지 못하고 "무서워서 못 하겠어"라며 피해만 했다.
가장 서글펐던 것은 내 병 때문에 아기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남편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빨리 나아서 아기 데려와야지"라는 말보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식의 반응이 더 많았다. 아기에 대한 그리움이나 책임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결국 깨달았다. 이 사람은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기는 내가 원해서 낳은 것이고,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것뿐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강아지에게 쏟는 애정의 절반만이라도 아기에게 보여줬으면 했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며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처음엔 그저 어려운 철학 개념이라 생각했는데, 내 상황에 비춰보니 너무나 명료했다. 남편에게 '아빠'라는 본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생물학적으로만 아빠가 되었을 뿐, 진짜 아빠로서 존재하려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나서 자신이 무엇인지 만들어간다고. 남편은 분명 아빠로 존재하고 있지만, 아빠가 되기로 선택하지는 않고 있었다. 매일매일 아빠가 되기로 선택해야 하는 것인데, 그는 그런 선택을 계속 회피하기만 했다. 아기를 안는 것조차 무서워하며 "엄마가 더 잘해"라고 말하는 것도, 강아지를 우선시하는 것도 모두 아빠로서의 책임을 피하려는 선택이었다.
반면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 순간 엄마로 존재해야 했다. 아기가 울 때, 내가 우울할 때, 남편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엄마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매 순간 엄마가 되기로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실존이었다.
더 생각해보니 남편의 우울증도 어쩌면 이런 선택의 부담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시댁 사이에서 누구 편을 들지 선택해야 하고, 아빠로서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해야 하고, 가족을 위해 어떤 사람이 될지 매일 선택해야 하는 것이 너무 벅찼던 것 같다. 그래서 아예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했다. 남편이 아빠 역할을 회피하는 것도, 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결국 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그의 몫이어야 했다.
그는 여전히 어색한 아빠이고, 여전히 강아지가 우선이며, 여전히 육아는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이것도 그의 선택이라는 것을.
나도 선택했다. 더 이상 남편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그가 아빠가 되기로 선택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이도 나도 지쳐버릴 것 같았다. 대신 나는 엄마로서 더 단단해지기로 선택했다.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