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의 기억
새벽 3시, 무언가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느낌에 잠이 깼다.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이게 그 유명한 양수 터진 증상인가? 영화에서처럼 극적이지도 않고,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명확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언가 달라진 몸의 신호였을 뿐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스마트폰을 켜고 검색을 시작했다. "양수 터졌을 때 증상", "양수인지 확인하는 방법" 등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리트머스 종이로 판별할 수 있다는 글을 발견했다. 다행히 집에 있던 리트머스 종이(일명 요 검사지)를 찾아 헤매며, 떨리는 손으로 검사를 해봤다. 파란색 종이가 서서히 빨간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드디어 확신이 들었다. 아, 정말 시작된 거구나.
이 순간 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떠올렸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새벽 3시에 잠들었던 나와 지금 깨어난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며,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는 그의 철학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내 몸도, 아기도, 이 순간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만약 양수가 터진 게 아니라면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수 있어요. 진료 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으니 신중히 생각하고 오세요."
그 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정말 양수가 아닐 수도 있잖아? 분명한 진통도 없는데? 첫 아이를 임신한 나에게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모든 감각이 의심스러웠다. 결국 새벽의 적막 속에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유독 천천히 흘렀고, 나는 침대에 누워 배를 쓰다듬으며 아기와 조용한 대화를 나눴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변화는 단순한 물리적 변화만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 두려움에서 설렘으로, 불안에서 기대로 흘러가는 마음의 흐름도 모두 그 변화의 일부였다.
해가 떠오르고 병원 문이 열릴 시간이 되자, 나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님은 내 배를 보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응원의 말을 건네주셨다.
"오늘 좋은 날이네요. 건강한 아기 낳으세요."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마음을 다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었다. 입원에 앞서 코로나 검사부터 해야 했고, 무엇보다 담당의가 코로나로 인해 부재중이라는 소식이었다. 조기진통으로 두 달간 이 병원에 장기입원해있던 터라 병원 자체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무서웠다. 더군다나 나를 줄곧 봐왔던 선생님이 없다는 사실은 당황스러웠다.
의료진들은 바쁘고 차가웠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 누우세요",
"이 서류에 사인하세요."
기계적인 지시들만 이어졌다. 어쨌든 검사 결과 양수가 터진 게 맞다는 확인을 받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복잡했다. 옆에서 남편은 나보다 더 떨고 있었다. 손은 차갑게 식어있었고, 괜찮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떨렸다.
다른 주치의가 배정되고 촉진제가 투여되었다. 링거가 꽂힌 팔을 바라보며, 드디어 진짜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촉진제가 들어간 뒤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오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너무 아파서 눈앞이 흐릿해지고, 하늘이 노랗다가 파랗다가 하는 것 같았다.
자궁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몸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시간만 흘러갔고, 진통의 강도는 점점 높아졌지만 자궁경부는 완고하게 닫혀있었다. 풍선이 부풀듯이 속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에 나는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고, 때로는 내 몸을 탓하기도 했다.
이때 또다시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길에서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고통이 심해질수록 아기와 만날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모든 변화는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다. 진통의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나는 변화의 강물 속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출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여정인지를 그때 처음 깨달았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변화의 본질이었다. 고정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흐른다.
그러던 중 모니터 속 아기의 심장박동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의료진의 표정이 급작스럽게 진지해졌고, 수술이라는 단어가 공기 중에 맴돌았다. 응급 수술. 자연분만을 꿈꿨던 내 계획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남편은 수술 소식을 들은 순간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렸고, 내 손을 꽉 잡은 그의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평소 나를 돌봐주던 담당의가 아니었기에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술실로 들어가며 차갑고 기계적이었던 의료진들도 이때만큼은 격려를 건네주었다.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힘내세요."
따뜻한 말들이 마취에 빠져드는 나에게 마지막 위로가 되었다. 모든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주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들려온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 마취로 인한 몽롱함, 몸의 아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잊혔다. 두려움과 설렘이 가슴속에서 교차했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그 순간, 나 역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 꽃잎이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게, 나는 엄마라는 존재로 변화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흐름이었고, 우주의 변화 법칙이었다. 나는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의 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