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몸은 만신창이였고, 마음은 더욱 처참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이토록 나를 해체시킬 줄은 몰랐다. 갑자기 걸린 코로나로 산후조리원을 일찍 나와야 했을 때,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제대로 쉴 틈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아직 아물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육아를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도 나를 도와주러 올라온 시댁에서 이런저런 참견이 시작되었다.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언제 재워야 하는지에 대한 간섭이 쏟아졌다. 갓 출산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나에게는 조언이 아닌 지적으로만 들렸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나땐 다 이렇게 키웠다."
끝없는 잔소리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미혼인 시누이들이 내 아기에 대해 입을 댔을 때는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너는 말라서 젖 먹이면 아기한테 안 좋아."
"불만스러워 보인다. 분유 쬐끔 더 줘라."
이런 말들이 나를 무능한 엄마로 만들었다. 임신했을 때도 과일 한 조각 사준 적 없이 입만 대던 분들이었다. 아이 키워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지 화가 났지만 말할 힘도 없었다.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 멀리 살고 있는 친정 부모님을 불렀다. 부모님이 오셔서 아기를 데리고 간 이후, 나는 침대에만 누워서 하루종일 있었다. 점점 시들어갔다. 몸의 통증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다. 남편은 곁에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그 사람은 내가 왜 우는지, 왜 아픈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새벽 두 시, 혼자 깨어 있을 때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던 삶인가?'
몸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젖이 불어 아프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것보다 더 아픈 건 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거울을 보면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부은 얼굴, 빠진 머리카락, 핏기 없는 입술.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이 매일 밤 나를 괴롭혔다.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을 때에도 시댁 사람들에게 나는 손주를 낳아준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아기를 잘 키워야 할 의무를 진 사람일 뿐이었다.
"아기가 잘 먹고 있니?"
"아기가 건강하니?"
"백일 잔치는 어떻게 할 거니?"
모든 관심은 아기에게만 향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몸이 아픈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기를 낳는 도구였고, 이제는 아기를 키우는 도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상기시킬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은 흔들렸다. 아내와 어머님 사이에서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중재만 반복했다.
"엄마도 걱정해서 그런 거야."
"조금만 참아줘."
"애기 때문에 다들 예민해진 거야."
이런 말들이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내가 원한 건 누군가 내 편에 서서 "아내가 힘들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는데, 그 간단한 것조차 얻을 수 없었다. 남편마저 나를 한 명의 독립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정말 혼자라는 외로움에 잠겼다.
밤마다 화장실에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
'다른 엄마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는 건가?'
자책과 분노가 교차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고,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나쁜 엄마 같아서 더욱 괴로웠다. 내 감정도, 내 고통도, 내 존재 자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살아갈 의미를 찾으려고 발버둥 쳤다. 심리학 책을 읽고, 정신과 약을 먹고, 명상을 해봤다. 모든 것이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나를 찾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사주였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사실은 간절함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이런 일들을 겪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오행의 상생과 상극, 계절의 순환, 음양의 조화를 공부하면서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이 자연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진짜 나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무성해지고,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 휴식하는 것처럼, 내 삶도 그런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의 나는 꽃이었다. 아름답고 향긋하고, 모든 이의 시선을 끄는 존재였다. 그런데 꽃은 영원할 수 없다. 꽃잎이 져야 열매가 맺힌다.
아기를 낳고 나서 겪었던 지옥 같은 시간들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것은 꽃이 지는 과정이었다. 예전의 나를 놓아주어야 했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했다. 몸의 변화, 마음의 혼란, 정체성의 혼돈. 모든 것이 필연이었다. 그 과정에서 시들어가는 것조차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꽃이 시들어야 열매라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것처럼 말이다.
공부하면서 알게 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이거다. 나는 지금 열매를 위한 여정을 하고 있다는 것. 시댁의 무관심을 가장한 참견도, 남편의 우유부단함도, 모든 상처와 실망도 이 여정의 일부였다. 내가 겪은 고통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혼자서도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친정 가족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시댁에서 상처받아 돌아온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가족의 품, "괜찮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가족들의 위로. 그들 앞에서만큼은 완벽한 며느리도, 완벽한 엄마도 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들의 딸이자 언니로 존재할 수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안식처였다.
내 아이가 그 열매일 수도 있고,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그 열매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얻게 될 지혜와 사랑, 그리고 진짜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그 열매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안다. 꽃의 아름다움도, 열매의 달콤함도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이의 고통스러운 변화 과정조차 자연의 완벽한 설계라는 것을. 시댁에서 나를 도구로 여겼던 것도, 남편이 나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도, 그 모든 아픔이 나를 더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지금 내 쓰임새를 다하고 있다. 꽃에서 열매로 가는 그 신성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때로는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모든 것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내가 겪는 모든 순간이 우주의 큰 그림 안에서 의미 있는 한 조각이라는 것을. 시들어가는 시간도, 홀로 견디는 고독도, 모든 것이 나를 진짜 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나도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내 안의 계절을 믿고, 내 운명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조용히 나의 열매가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