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 끝에 남은 것
백일을 맞은 아이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꽃잎이 떨어지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임신의 봄부터 시작된 차가운 바람들, 산후풍과 뇌경색이 몰고 온 혹독한 겨울, 그리고 옹알이와 뒤집기로 움트기 시작한 새싹들까지. 이 모든 계절들이 하나의 긴 서사를 이루어왔다.
임신 초기, 내 몸은 작은 생명을 품은 정원이었다. 하지만 그 정원에는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지적들.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목소리는 마치 겨울바람처럼 차가웠다. 나는 정원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땅이 되어야 했다.
출산 후에는 더욱 거센 바람이 불었다. 신생아를 다루는 모든 방법들, 수유하는 시간과 방식, 심지어 기저귀를 갈아주는 손길까지. 모든 것이 틀렸고, 모든 것이 부족했다. 영양가가 부족한 모유를 먹이지 말고 뷴유를 먹이라는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아기가 조금만 울어도 "배고파서 우는 거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차가운 바람들 속에서 내 몸은 견디지 못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코로나로 급하게 나온 집을 정리하다가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산후풍이 찾아왔고, 이내 뇌경색까지 몰려왔다. 왼쪽 몸이 얼어붙듯 둔해졌다. 내 몸이라는 정원에 서리가 내린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남편과 나 사이에 생긴 보이지 않는 강이었다. 임신 중부터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 그 틈은 이제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아이라는 작은 다리로만 겨우 연결된 채로.
50일이 되었을 때 시누이의 거짓말은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렸다. 친정에서 서운해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나는 그 통화 자리에 있었고, 엄마의 따뜻한 배려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거짓말로 우리 가족이 받은 상처는 깊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고. 백일만큼은 우리만의 온기 속에서 축하하겠다고.
보부아르는 말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아이의 첫 옹알이를 들으며 그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 우~"라는 그 작은 소리는 세상과의 첫 대화였다. 아이도 나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뒤집기에 성공한 날, 아이는 세상을 뒤집어서 바라봤다. 같은 천장이지만 다른 의미로 보였을 것이다. 나 역시 그와 함께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 사랑이라는 관계들. 모든 것이 새로운 빛으로 비춰졌다.
작아진 옷들을 정리하는 오후, 시간의 무게를 느꼈다. 신생아복부터 80사이즈까지, 각각의 옷감 속에는 그 시절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프루스트가 말한 기억의 향기처럼, 옷 한 벌 한 벌이 지나간 시간들을 불러일으켰다. 엄마와 함께 개면서 나눈 대화들은 우리 사이의 다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예방접종 날, 아이의 작은 아픔이 내 가슴을 찔렀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불안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랑하는 것을 지켜야 한다는 존재론적 불안. 하지만 그 불안이야말로 내가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 증거였다. 시누이의 15만원과 "수고했다"는 말을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내 아이에 관한 일에 누군가의 시혜는 필요하지 않았다.
백일 당일, 아이에게 작은 정장을 입히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어떤 계절들을 지나게 될까. 어떤 바람들을 맞으며 자라날까. 친정에서 치른 소박한 백일상은 따뜻했다. 막냇동생이 준비한 케이크, 엄마의 미역국,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들. 남편도 함께했지만 우리 사이의 강은 여전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평화로웠다.
백일을 지나며 깨달았다. 나 역시 달라져 있다는 것을. 산후풍과 뇌경색으로 얼어붙었던 몸은 친정의 온기로 조금씩 녹고 있었다. 왼쪽의 감각도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시댁과의 관계는 차단으로 정리했다. 완벽한 며느리가 되려던 강박도 내려놓았다.
엄마와의 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했다. 딸과 엄마에서 동반자가 된 것 같았다. 밤새 함께한 열 보초, 옷을 정리하며 나눈 이야기들, 조용한 백일잔치의 준비. 모든 것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사랑이 식은 자리에 의무만 남았지만, 그것도 하나의 현실이었다. 아이라는 작은 다리로 연결된 우리.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보부아르가 말한 것처럼, 나는 엄마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본능이 아닌 선택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 창조로. 아이와의 모든 순간들이 나를 조금씩 빚어가고 있었다. 옹알이를 들으며, 뒤집기를 응원하며, 작은 성장들을 지켜보며.
꽃잎이 떨어지는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임신의 봄부터 시작된 차가운 계절들, 산후풍과 뇌경색의 혹독한 겨울, 관계들의 갈등과 아픔들. 하지만 그 모든 꽃잎들이 떨어진 자리에 작은 열매가 맺혀 있었다. 건강하게 자란 아이, 회복되어가는 몸, 단단해진 마음, 그리고 더 깊어진 모성.
이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된다. 아이는 계속 자랄 것이고, 나 역시 엄마로서 성장해갈 것이다. 앞으로 올 수많은 첫 번째들 - 앉기, 기기, 걷기, 말하기. 우리는 그 모든 순간들을 우리만의 속도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함께 해나갈 것이다.
꽃잎이 모두 떨어진 자리에 맺힌 작은 열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였다. 차가운 바람들을 견뎌낸 끝에 얻은 소중한 결실. 이제 이 열매가 어떻게 영글어갈지, 어떤 맛을 낼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에는 이제 완연한 여름이 와 있었다. 벚꽃은 모두 떨어지고 초록빛 잎들이 무성했다. 개나리도 노란 꽃 대신 푸른 새순들로 가득했다. 자연도, 우리도, 모든 것이 새로운 계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이는 오늘도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꿈속에서는 어떤 세상을 보고 있을까. 아마도 따뜻하고 안전한 세상일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 몫이다. 꽃잎이 떨어지는 시간을 견뎌낸 엄마로서, 이제 열매를 키워나갈 엄마로서. 차가운 바람들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작은 온기를 지켜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