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감당하는 새벽의 무게
친정 집 작은 방. 아기는 겨우 잠들었고, 나는 막 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몸은 산후풍으로 얼어붙어 있었고,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시댁과의 갈등, 남편의 무책임, 아기 걱정, 내 몸 걱정. 모든 것이 뒤엉켜 있었다.
폰 화면에 남편의 이름이 떴다.
"나 사랑해?"
그의 목소리였다. 서울 집에서, 혼자 편하게 자고 있을 그가, 새벽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나 사랑해?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지금? 지금 그 질문을?
혼자서 무너져가는 나에게 사랑 타령을 하고 있다.
"...아니."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차갑게. 단호하게.
"뭐?"
그의 목소리가 변했다. 당황한 듯, 아니 화가 난 듯.
"사랑 안 해. 지금은."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 갑자기라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 허탈한 웃음. 이 사람은 정말 모르는구나. 내가 얼마나 무너져 왔는지. 우리 관계가 얼마나 망가져 왔는지.
"갑자기가 아니야."
내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지쳐서인지 알 수 없었다.
"너는 나한테 뭘 해줬어? 내가 아플 때, 시댁이 나를 공격할 때, 내가 혼자 아기 돌볼 때, 너는 어디 있었어?"
"나도 힘들었어. 나도 산후우울증..."
산후우울증. 또 그 말이다.
"닥쳐!"
나는 소리쳤다. 아기가 깰까 봐 베개를 입에 대고 소리쳤다.
"너는 아기를 낳지도 않았어! 몸이 무너지지도 않았어! 시댁 식구들한테 매일 공격받지도 않았어! 그런데 산후우울증?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왜 이래? 갑자기 화를..."
"갑자기가 아니라고!"
목소리가 커졌다. 참았던 모든 것이 터져 나왔다.
"나는 매일 너한테 도움을 요청했어. 시어머니 좀 말려달라고, 시누이들 좀 조용히 시켜달라고, 내 편이 되어달라고. 그런데 너는? 방관만 했잖아. 아니, 가끔은 그들 편에 섰잖아!"
"......"
"새벽에 혼자 아기 재울 때, 너는 편하게 자고 있었어. 내가 산후풍으로 몸이 얼어붙을 때, 너는 회사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어. 나는 혼자였어. 계속 혼자였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이혼하자."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믿기지 않았다. 이혼. 그 단어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나는 남편이 뭐라고 대답할지 기다렸다. 미안하다고 할까. 아니라고 할까. 다시 잘해보자고 할까.
"그래."
그가 말했다.
"그래."
심장이 멈췄다.
그래? 그게 전부야? 고민도 없이? 만류도 없이? 그냥 그래?
"뭐라고?"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이혼하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폭발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베개 같은 건 이미 내던진 상태였다. 아기가 깨든 말든 상관없었다.
"내가 이혼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아? 내가 재미로 이러는 것 같아?"
"......"
"나는 네가 사과하길 바랐어!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말해주길 바랐어! 그런데 그래? 이혼하자고 하니까 그냥 그래?"
눈물이 쏟아졌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눈물.
"우리가 뭐야? 우리 관계가 뭐야? 그렇게 쉽게 끝낼 거면 애초에 왜 결혼했어? 왜 아기를 만들었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좋아! 그래 이혼하자! 내일 보자! 당장 서류 떼자!"
나는 소리쳤다. 목이 쉬도록. 숨이 막히도록.
"내일 봐! 이혼하자고!"
전화를 끊었다.
방은 고요했다.
다행히 아기는 깨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깼다가 다시 잠든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내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으니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혼.
그 단어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먼저 꺼냈지만, 그가 동의한 순간 그것은 진짜가 되었다.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후련함이었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시댁 눈치를 볼 필요도, 남편에게 실망할 필요도,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낄 필요도 없다. 차라리 정말로 혼자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밀려왔다.
아기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 없이 자랄 이 아이. 한부모 가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갈 이 아이. 내가 혼자서 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자신도 무서웠다. 남편 없이 살아갈 나.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모든 면에서 혼자가 될 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랑은 이미 식었다. 아니, 식은 게 아니라 변했다. 열렬했던 사랑은 이제 정도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습관 같은, 의무 같은, 그저 같은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한 익숙함 같은 것.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완전히 끝내기는 무서웠다.
새벽은 길었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내일이 떠올랐다. 남편을 만나는 것. 이혼 서류를 떼는 것. 정말로 끝내는 것.
아기가 꿈틀거렸다. 나는 아기를 안아 올렸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이 아이 때문에라도 잘 해야 하는데. 이 아이 때문에라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이 아이 때문에라도 건강한 관계여야 하는데. 불행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보다 차라리 행복한 한부모 밑에서 자라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새벽은 무거웠다. 견딜 수 없이 무거웠다.
아침이 밝았다.
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받지 않으려다가 받았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아니, 사실은 기대하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잘못했다는 말을.
"...미안해."
그의 목소리였다. 어젯밤과는 달랐다. 조금 작아진, 조금 떨리는 목소리.
"이혼은 없던 일로 하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다시 잘해볼게."
그 말을 기다렸다. 밤새 기다렸던 그 말. 하지만 이제 그 말이 들려도 아무 감정이 없었다.
"......"
"여보?"
"알았어."
내가 말했다. 차갑게. 담담하게.
"이혼은 안 할게. 그런데."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앞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진짜 이혼할 거야. 그때는 너도 동의 안 해도 할 거야."
"알았어. 정말 미안해."
전화를 끊었다.
이혼은 없던 일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관계가 원래대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날 밤 이후,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다.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그냥 같이 사는 사람. 아이의 아빠. 법적 배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
사랑은 이미 변해버렸다. 열정은 식었고, 설렘은 사라졌다. 남은 건 정이었다. 아니, 정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무언가. 습관? 의무? 책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날 새벽 이후 나는 혼자가 되었다는 것.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부부지만, 정서적으로는 이미 혼자였다.
그게 슬픈지, 당연한 건지, 잘한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새벽의 무게를 기억한다. 혼자 감당했던 그 무게를. 그리고 알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엄마가 된다는 것의 무게이다.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의 현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부부다. 하지만 그날 새벽, 무언가는 확실히 끝났다.
사랑이 끝난 건 아니다. 다만 변했다. 돌이킬 수 없이.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후회 없이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꽃대가 흔들리 듯, 사랑도 변한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라면, 어쩔 수 없다.
다만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무엇이 남을지는 아직 모른다.
열매일까, 앙상한 가지일까.
그것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