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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 나무 Sep 19. 2023

엄마와 나 그리고 췌장암

엄마의 용감한 도전이 시작된 날


“악성인 것 같습니다.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어요. 저희 병원에서는 어머님께 해드릴 게 없습니다.”


2020년 7월 1일. 드라마나 영화 속 대사 같은 말을 현실 속에서 내가 직접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는 불과 몇 주 전에도 걷기 모임에서 친구분들과 서울대공원 주변 둘레길을 1만 5천 보 이상 걷고 오셨다고 자랑하셨었다. 지난주에는 남산 둘레길을 돌았는데 다른 때 보다 숨이 차고 어지럼증이 있긴 했지만, 이제는 당신도 나이가 드나 보다고 대수롭지 않아 하셨다. 하지만 그 이후 며칠이 지나도 가슴이 답답하고 몸 곳곳이 가려워서(나중에 알고 보니 가려움증은 췌장암 증상 중의 하나였다) 혹시 이른 더위를 먹은 것인가 하는 생각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로부터 나온 말은 췌장에 악성 종양이 있다는 말이었다. 


‘정말 췌장암이라고?’  


평소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실시하는 안내에 따라 2년에 한 번씩 받는 꼬박꼬박 건강검진을 놓치지 않으셨다. 다만, 2020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가시는 것이 내키지 않으시다고 차일피일 미루고 계셨다. 하지만 코로나의 기세가 좀처럼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동네 병원에서 사 온 소화제 만으로는 증상이 나아지지 않다 보니 미뤄 둔 건강검진을 받고 약이나 타겠다는 심산으로 병원에 가신 것이다. 건강검진 때마다 이용하셨던 종합병원 규모의 동네 2차 병원이었다. 


2020년 6월 30일은 주중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울에 올라와 있던 날이었다. 여름 방학을 끝으로 정년 퇴임을 하시는 모교 교수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왔기 때문이다. 평소 학교 일에 바빠 주말이고 방학이고 미리 예정된 일이 아니면 대부분 직장이 있는 지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서울에 온 것은 은퇴하시는 교수님을 뵈려고 온 것뿐인데 그날 저녁 엄마는 다음 날 병원에 함께 갈 수 있냐 물으셨다. 그간의 상황을 넋두리처럼 털어놓으시고는 건강 검진을 했던 병원에서 가족이 함께 와 결과를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일정인 데다가 단순 건강검진만으로 가족을 오라고 하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몇 가지 더 여쭤 보았다. 앞서 이미 기본적인 건강검진 결과는 간단히 설명을 받은 상황이었고, 결과 중에 혈액검사 수치가 좋지 않아 추가로 초음파와 CT 촬영까지 하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 다음날 7월 1일이 엄마에게 또 나에게 온 가족에게 새로운 시간이 펼쳐져 있을 줄이야... 추가 검사를 실시했고, 결과를 들으러 가족을 대동하라고 했다 하니 썩 좋은 결과는 아닐 수 있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상상조차 하지 못한 말이었다. 머릿속은 이미 하얬지만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암이 확실한가요?”

“물론 추가적인 검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지금 나온 결과로써는 거의 확실합니다.” 

“수술은 가능한가요?” 

“글쎄요.. 더 자세히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지금 확인되는 것으로만 봐도 2.8cm 정도라 사이즈가 작지 않고 황달도 조금 있으셔서... 서두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오빠가 외국에 살고 있는데 혹시 알려야 할까요?” 

“그러시는 게 좋겠습니다. 가급적 빨리 연락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몇 가지 질문과 답이 오갔다. 뭐라고 물었는지 무슨 답을 들었는지 그 당시엔 무슨 정신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직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 함께 동행했던 엄마, 아버지, 막내 이모의 표정이 하나 같이 비현실적이었던 것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고, 믿어지지 않았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현재 상태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제법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귓가에는 ‘암’이라는 단어와 ‘서두르라’는 말만 맴돌 뿐이었다. 




2014년 5월, 명동성당 행사에서 뽑았던 말씀 카드


2014년 5월 오랜만에 명동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고 나오던 날. 미사 마치고 오는 길에 뽑아 든 카드에 담긴 말씀은.. 역시 사랑이었다! 이 글을 시작하며 함께 올릴 만한 사진을 찾는 중에 갖고 있던 이 말씀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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