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전원과 담즙 배액 시술
지난 2020년 7월 1일, 엄마의 용감한 도전이 시작된 날이다. 엄마는 암환자로서, 나는 간병인으로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처음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서 췌장에 악성 종양이 있다는 결과를 듣고, 바로 대형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했다. 병원 내에 있는 진료협력센터에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어느 병원으로 전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첫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에게 추천을 요청했는데, 인근 대학병원 중 한 곳을 추천해 주셨다.
시간이 지금 이때를 떠올리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다행히 다음 날 오전에 진료 예약 가능했다. 당시로서는 빨리 추가검사를 받고 후속조치를 할 수 있는 곳이면 대형 병원 어디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다음 날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병원 예약을 하는 사이에 엄마는 다른 지인분과 통화를 하시고는 혹시 서울대 병원은 예약이 가능한 지 확인해 보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미 다른 대학병원에 예약은 했지만, 나로서도 빠른 시간 예약만 가능하다면 서울대 병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들은 직후였기 때문에 병원 여러 곳이라도 다니며 결과를 재확인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마치 점 보러 가는 사람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러 다니고 싶은 심정도 이와 비슷할까.
서울대 병원은 일반진료를 예약하려면 6개월이나 1년씩 예약 대기를 하는 것이 다반사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기에 빠른 시일 내에 진료를 예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췌장암은 대부분 발견하는 시기가 치료 시기를 놓친 이후인 경우가 많아 다른 어떤 병보다도 서둘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의 은사님 중에도 췌장암 진단을 받으시고 6개월이 채 못 되어 유명을 달리하신 분이 계셨기에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울대 병원에서 바로 다음 날로 예약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앞서 예약했던 대학병원보다 1시간 빠른 일정으로. 진료 예약 담당자 말로는 해당 시간에 갑자기 예약을 취소한 사람이 생겨서 한 자리가 비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첫 타임 진료니까 늦지 말고 꼭 시간 지켜서 가라고 당부했다. ‘그래,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무서운 일이 일어났지만 희망도 있을 거야. 확인하고 물어보기를 잘했구나’ 싶었다. 답을 찾으려면 정신을 차려야지 하며 다시 다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 했던 것 같다. 얼토당토않은 일이라고 느껴지는 와중에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힘이 있으니 잘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는 선물을 함께 허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이후에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발견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장면이었다.
다음 날 서둘러 서울대학교 암병원 췌장/담도암센터로 향했다. 서울대 병원에는 둘째 외삼촌이 동행을 해 주셨다. 외삼촌은 10여 년 전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으신 후 몇 년 전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암 투병 경험이 있는 외삼촌이 동행해 주신 것이 힘이 되었다. 서울대 병원에서 만나게 된 담당 의사는 앞서 진료받았던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의사는 스캔한 결과를 보고, 종양 사이즈가 작지 않지만 수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종양이 3cm만 넘어도 수술이 불가능할 텐데 지금 사이즈로는 한 번 해볼 만하다고 했다. 아주 빠르고 강한 말투에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말이었다. 췌장암에 대한 절망적인 선입견만 있었던 터라,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만으로도 엄마가 다 나으신 것 같았다. 의사는 더 이상 질문이나 덧붙일 말은 허락지 않고 다음 일정을 잡고 가라는 사무적인 말로 다음 환자 진료를 재촉했다. 우선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인 말에 기뻐하며 바로 진료실을 나왔다. 외삼촌이 의사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몇 마디를 더 하고 나오셨는데 그 모든 시간이 불과 3분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첫 진료였음에도 환자의 상태를 세심하게 문진 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오직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매우 빠르게,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니 의사는 그것에 필요한 정보만을 요구하였다. 제한된 시간에 워낙 상황이 중한 많은 환자들을 만나야 하는 전쟁터 같은 상황에 환자도 보호자도 익숙해져야 했다.
췌장암이라는 것을 확인받자마자 엄마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황달이 나타난 것이다. ‘황달’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런 증상을 가진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엄마를 통해 그 증상을 보게 될 줄이야! 시간이 다르게 황달은 심해졌다. 암세포가 췌장 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담도를 눌러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다시 간으로 역류하면서 생기는 증상이었다. 눈에 잘 보이는 피부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 가르마, 눈의 흰자위까지 샛노랗게 변해가는 모습은 그전까지 엄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말 환자였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마주 보기 힘들었다.
다행히 서울대병원에서 첫 진료 때 약간의 황달 증상을 발견하였고, 바로 이틀 뒤 입원하였다. 황달은 췌장암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였는데,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간이 큰 위험에 놓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입원한 병실은 간호간병통합병동이었는데, 엄마의 침대 위치에서 얼굴만 돌리면 바로 서울 성곽이 눈에 들어왔다. 상황은 비할 바 없이 막막하고 암울하게 느껴졌지만 왠지 기분이 편안하다고 하셨다. 몇 년 전, 서울 성곽 전체를 순례한 때를 떠올리시면서 당신 발로 씩씩하게 걸으셨던 때를 떠올리셨다. 비록 침대에 누워서 봐야 하는 것이 믿기지 않으시다고 하시면서도 수술 잘 받고 완치해서 꼭 다시 가시겠다고 각오를 다지셨다. 복잡한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성곽길이 엄마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서 나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입원 후 7월 6일, 담즙 배출을 위한 간담즙 배액술 시술을 받았다. 담즙 배출을 위해 스텐트를 삽입하는 것이었는데, 내시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내과에서 담당의가 바로 시행을 하였다. 수면으로 위 내시경을 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았는데, 매우 빠른 시간에 시행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시간 차이가 클 것 같았다. 시술 이틀 후 엄마는 퇴원을 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되었다. 수술 중심의 병원이다 보니 조금만 상태가 회복되면 바로 퇴원을 해야 했다. 급한 불은 껐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퇴원을 했다.
초진을 받고 고작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한 달은 지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