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만의 길은 외로운 길일까?

by 청개구리


대학을 졸업하면서 여러 대기업의 최종 문 앞까지 갔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지만, 내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눈앞에서 닫히는 문들을 보며 처음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이 길을 가고 싶은 걸까?”


그때 선택한 곳은 공공기관의 계약직 자리였다. 정규직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내게 ‘계약직’이라는 조건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낯선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동료들은 내 시선을 바꿔 놓았다. 각자 원하는 꿈을 향해 이 자리를 거쳐가는 중이었고, 그들의 모습은 안정적인 자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나 역시 이 자리를 지나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들으려 했다.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공무원이야말로 가장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이라고 설득했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공무원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시절에는 그들의 말이 진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임용이라는 결과를 손에 넣었다.


공직자로서의 삶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민원 현장에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공직은 나를 가두는 틀처럼 느껴졌다. 규정과 절차 속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해보고 싶었던 시도들이 번번이 막히곤 했다. 안정과 보람을 동시에 누리면서도, 이상하게 더 답답함은 점점 커졌다. 결국 과감히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뒤로 프리랜서 강사로 나서기도 했고, 십 년 전 포기했던 유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모두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을 향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할 때마다 외로움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함께 의논할 사람은 없었고, 내 선택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도 드물었다. 주변에서는 “왜 굳이 안정적인 길을 두고 돌아가냐”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 시선은 나를 더 흔들리게 만들었고, 때로는 내 선택이 틀린 건 아닌지 불안하게 했다.


그 고립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열정을 쏟고 있음에도 옆에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주저했고, 중간에 멈추기도 했다. 확실한 원동력이 부족했던 건 결국 혼자의 무게 때문이었다. 혼자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지치게 했다.


돌아보면, 그 공허함은 단순한 결핍만은 아니었다. 내가 내 길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겪어야 했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감정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결국 외로움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확인시켜 주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그 외로움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다. 나만의 속도로 걸어야 했기 때문에 옆에 함께 걷는 이가 적었던 것뿐이라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 완전히 고립된 게 아니었다.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외로움 속에서 흘려보낸 기록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닿고 있었다.


나만의 길은 때로 외롭지만, 그렇다고 무가치한 길은 아니다. 외로움이 있었기에 더 깊이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불안 속에서 흔들리더라도 나답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언젠가 이 길에서 진정한 동행자를 만난다면, 그것은 내가 나답게 걸어온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외로움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길을 확인시켜 주는 이정표였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시작된 작은 기록이, 다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렇게 남겨진 기록은 더 이상 단순한 메모가 아니었다. 내 마음을 붙잡아 주는 위로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써 내려간 문장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글은 내 삶의 흔들림을 정리해 주는 힘이 되었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