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불안과의 동행

by 청개구리


노량진에서의 시간이 끝난 뒤에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미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몇 살 더 많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만큼은 절대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은 나를 늘 조급하게 만들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앞서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매일 따라다녔다.


수업을 들을 때도, 과제를 할 때도, 동아리 활동을 고민할 때도 마음속에는 시계가 째깍거렸다.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더 빨리, 더 많이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내 안에는 질문들이 멈추지 않았다.


그 불안은 곧 결과물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어학연수 기회를 잡기 위해 시간을 쪼개 공부했고, 결국 교내에서 최고 점수를 취득했다. 일본어학과 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준비한 덕분에 연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연수에 참여한 뒤에도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밤마다 교재를 붙들었다. 자리를 잃지 않으려는 불안이 나를 계속 몰아붙였다.


증명에 대한 강박은 각종 공모전으로도 이어졌다.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고, 학과 최초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교수님은 공모전 동아리를 만들어 보라고 권유했지만, 내 마음은 성취의 기쁨보다도 곧장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불안은 내게 늘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잠시 성과를 맛보더라도, 금세 또 다른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불안이 나를 단지 괴롭히는 게 아니라, 동시에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을.


불안했기에 서둘러 준비했고, 불안했기에 악착같이 배웠다. 일본어를 다시 시작한 것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은 불안 덕분이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불안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부추겼다.




한동안 불안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다. 마치 길 위에서 함께 걷는 동행처럼, 때로는 속도를 늦추게 하고 때로는 방향을 점검하게 만든다. 불안이 없었다면 나는 훨씬 안일하게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불안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렇다, 나는 항상 불안하다.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지금조차 ‘이 글이 과연 누군가에게 닿을까?’ ‘그냥 흘러가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고개를 든다. 그 불안을 인정하는 순간, 글을 쓰는 이유는 더 분명해진다.

‘불안을 지워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과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 쓰자.’


글은 불안을 잠시 내려놓게 하고, 다시 일어서게 한다.


불안은 더 이상 미워할 대상이 아니다. 내가 더 나은 방향을 찾게끔 고민하게 만드는 동료다.

불안이 곁에 있다는 건, 내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