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고등학교 때 일본 유학을 준비했다.
모의고사 대신 일본어 문제집을 풀었고, 대학 설명회를 검색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는 작은 방에서 혼자 종이를 몇 번이고 접었다 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고, 학비와 생활비라는 벽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합격 통지서의 두 글자는 그대로였지만, 현실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수능조차 포기하고 유학만 바라봤던 탓에 한국 대학으로의 길도 쉽지 않았다. 달력에 빈칸이 늘어가던 그 해, 나는 원하지 않은 공백기를 맞았다.
모두가 미니홈피에 입학식 사진을 올리던 봄.
댓글에 축하 이모티콘이 쏟아질 때마다 컴퓨터 화면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대학교 축제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는 반짝이는 말들이 내 방으로 들어올 때면, 내 자리의 어두움이 더 또렷하게만 느껴졌다.
그때의 열등감은 조용한 그림자였다.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비교가 됐다.
나는 왜 여기서 멈춰 있을까. 질문은 끝이 없었다. 공허함은 새벽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모두가 잠든 시간, 책상 위에 노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감각에 눈물이 왈칵 터지곤 했다.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두 글자가 내 앞에 놓였다.
그것은 어느새 나의 이름이자 직업이 되었다. "어느 학교 다니니?"라는 질문에는 대답 대신 웃어야만 했다. 노량진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어둠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좁은 골목마다 책가방을 맨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고립된 기분이었다.
넓은 강의실에는 모두가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러온 듯한 표정으로 묵묵히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앞뒤에 앉은 사람들 머리카락 사이로는 드문드문 흰빛이 섞여 있었다. 그들을 볼 때면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목구멍을 죄어왔다. 공부보다 불안이 더 큰 숙제였다. 책장을 넘길수록 미래의 그림자를 함께 넘기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일본어 단어장은 접어 넣고, 다시 한국 대학을 준비해야만 했다. 늦은 출발이라는 조급함 속에서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이어붙였다. 책상 위에는 문제집이 쌓였고, 밤마다 방안을 가득 채우는 열등감과 싸워야 했다.
돌이켜보면, 열등감은 나를 짓누르기만 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등을 떠미는 동력이었다. 비교에 지칠수록 더 배우려 했고, 흔들릴수록 다시 일어서고자 했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지금도 열등감은 내 등 뒤에 함께 한다. 다만 예전처럼 나를 짓누르지는 못한다.
나는 안다. 그것이 내 곁에 있을 때, 나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오래 준비한다는 것을.
그래서 열등감을 두려워하기보다 동반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를 괴롭히던 감정이 결국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