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의 삶.

내가 원하는 삶의 목표란?

by 청개구리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꽤 자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기업 채용에서 번번이 낙방하고, 결국 공공기관의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직장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마음속은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정규직 직원들 앞에서는 괜히 더 바른 자세로 앉아있어야 할 것 같았다.

보고서 하나를 만들 때도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었다.

나처럼 첫 직장을 시작한 사람,

경력 단절을 딛고 다시 사회로 돌아온 사람,

이직을 위해 잠시 머무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못해 들어온 직장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람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실업급여를 받고, 다시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더 좋은 곳으로 가지 않지?’

‘왜 스스로를 더 성장시키려 하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하게도, 그들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어떤 이는 그 자리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두 번이나 그만뒀다.

한때는 ‘평생직장’이라 불리던 그곳을 스스로 떠났다.

누군가는 아깝다고 했고,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떤 평가보다, 그 선택을 한 나 자신이 가장 놀라웠다.


나는 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좇아왔다.

좋은 직장, 안정된 환경, 사회가 인정하는 길.

그 틀 안에 들어가면 안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늘 사회의 시선을 의식했고, ‘괜찮아 보이는 나’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잊고 살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는 법’을 배우기보다 ‘보이는 법’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그동안 내가 원했던 건 단순한 명사들이었다.

직업, 지위, 안정.

그 단어들을 손에 쥐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그것들을 얻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공허했다.

이름은 남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명사의 삶이 아니라, 동사의 삶이었다.

무엇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직함보다 행동,

지위보다 영향,

안정보다 움직임.


직업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의미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안정된 길보다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해야겠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삶을 택해야겠다.

멈춰 있던 이름 대신, 움직이는 나로 살아가야겠다.


<동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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