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캘리포니아에 머무는 동안 보고 싶은 동물이 몇 있다. 화려한 색과 장거리 이주로 유명한 제왕나비, 정지비행과 수평비행을 하는 벌새, 알래스카에서 바하 캘리포니아까지 이주하는 귀신고래, 그리고 코끼리바다물범이다.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딸내미를 달래가며 San Simeon 이라는 곳에서 이 물범을 볼 수 있었다. San Simeon은 해안가 절경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1번 도로에 있고, 빅서(Big Sur)와 산루이스오비스포(San Luis Obispo)의 중간에 위치한다.
이름이 의미하듯이 코끼리바다물범은 거대한 몸집으로 유명하다. 암컷은 평균 3m에 600kg이 넘는다. 그런데 수컷은 무려 4m에 크기에 몸무게는 2.3톤이나 한다. 커다란 몸집도 관심거리이지만, 암수간의 차이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이렇게 암수가 서로 몸크기에서 차이가 나는 것을 '성적크기이형'이라 한다. 사람도 남자가 전반적으로 여자 보다 큰 성적크기이형이 있다. 코끼리바다물범 수컷이 암컷 보다 큰 이유는 짝짓기를 목적으로 수컷 끼리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수컷은 근처에 다른 수컷이 오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으르렁거리며, 싸움도 주저하지 않는다. 만약 다른 수컷을 다 몰아 낼 수 있다면 그 근처에 있는 수 십 마리의 암컷과 짝짓기를 할 기회가 있다.
우리가 San Simeon에 왔을 때는 4월 초였다. 짝짓기 시기는 주로 겨울철이기 때문에 아쉽게도 수컷들끼리의 경쟁과 싸움은 놓쳤다. 그러나 해안에는 물범들이 수 백 마리는 넘어 보였다. 대부분 암컷이고, 상당히 자란 새끼들도 눈에 많이 뛰었다. 대부분 해안 모래사장에서 자고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암컷끼리 자리싸움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입을 벌려 으르렁 거리면 상체를 일으켜 세워 상대방을 위협했다. 그렇지만 서로 피비린내 나는 격렬한 싸움은 전혀 없었다. 해안가 한 가운데에는 수컷 한 마리가 늘어져 자고 있었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한 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마 이 수컷은 근처에 돌아다니는 새끼들 대부분의 아비일 것이다.
코끼리바다물범을 관찰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몇 십 년 전만해도 이 물범이 완전히 멸종되었다고 간주했다. 해양포유류는 차가운 바닷물로 부터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두터운 지방층이 발달되어 있다. 이것을 blubber라 하는데 물범의 토실토실한 모습은 이 지방층 덕분이다. 코끼리바다물범의 지방층으로 양질의 기름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1800년대 말부터 수십 년 동안 무자비하게 사냥되었다. 그래서 태평양 연안에서 이 코끼리바다물범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멸종되었다고 간주되었다. 그런데 바하 캘리포니아 앞에 과달루피 섬에서 일단의 코끼리바다물범이 발견되었고 오늘날 모든 코끼리바다물범은 이들의 후손이다. 현재 San Simeon이 속한 무리만 하더라도 15,000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멸종될 뻔한 코끼리바다물범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동시에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에 감탄했다. 우리가 적절할 때 조금만 노력하면 훼손한 생태계도 복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집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