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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May 24. 2016

소백산의 철쭉

거칠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지만, 공생으로 극복하고 활짝 꽃피는 철쭉

유학에서는 우리나라에 중요한 산이 2개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소백산이요, 다른 하나는 지리산이다. 이 중 소백산을 지리산 보다 앞에 친다. 그 이유는 소백산에는 퇴계 이황 선생님, 지리산에는 남명 조식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소백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소백산에 대해 설명하시는 영동대학교 신준환 교수님의 재치 있는 말씀이다. 생물다양성교육센터의 권희정 박사님은 소백산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태백산은 웅장하고, 무섭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나 소백산은 아담하고, 정겹고, 푸근하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부끄럽게도 오늘 처음 소백산으로 산행을 한다. 그래서 소백산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 없다. 이번 <한국의 재발견 식물탐사대>는 제30차 탐사를 소백산에서 개최한다. 아울러 초중고 선생님들이 주축인 파라택소노미스트의 워크숍도 동시에 진행된다. 그래서 식물탐사대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38명이 탐사에 참여하였다.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님은 소백산 탐사에서 철쭉 군락과 모데미풀을 반드시 감상해야 한다고 짚어주신다.


오늘 탐사는 소백산의 1자락에 있는 삼가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하였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늘 그렇듯이 일행은 두 개의 무리로 갈라졌다. 현진오 박사님을 따라가는 앞서가는 무리와, 구수하게 설명을 하시는 국립생물자원관의 이병윤 과장님의 무리가 뒤쳐져 따라왔다. 나는 철쭉을 찾아 양 무리를 왔다 갔다 했다. 그렇지만 쉽게 철쭉이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철쭉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봄에 아파트의 화단이나 공원에 하얗고, 빨갛고, 분홍색의 철쭉꽃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많은 가지가 갈라지고, 가지마다 꽃들이 잔뜩 핀다. 꽃들도 오래가기 때문에 철쭉은 원예종으로 인기가 많다. 그러나 도시에 있는 철쭉은 산철쭉이다. 우리가 오늘 만나고 싶은 철쭉은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연분홍 꽃을 자랑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한 두 시간 정도 지나 700 m 고도에 이르자 철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연분홍빛 저고리를 입은 처자가 우리를 반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철쭉꽃은 이미 시들어져 있었고, 일부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조금 실망을 하고, 다시 앞사람을 쫓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곧 철쭉꽃이 산행길을 따라 연신 나타났다. 철쭉은 사람 키보다 조금 큰 관목이다. 그래서 산행길을 따라 하늘하늘한 꽃들이 사람 눈높이에서 스쳐 지나간다.


고도가 1000 m 근처에 이르자 철쭉꽃들이 만발해 있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유난히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이제 개엽한 신갈나무의 연두색 잎과 연분홍의 철쭉꽃이 어우러져 우리 옆으로 위로 지나갔다. 길 양쪽의 철쭉꽃들이 아치를 만들고 있고, 우리는 그 사이로 통과했다.  곧 아치는 사진 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통과하기도 어렵다.


연한 분홍색의 철쭉꽃과는 대조적으로 진한 분홍색의 꽃망울이 꽃들과 같이 솟아 있다. 이 분홍 꽃망울은 마치 양의 젖꼭지 같이 생겼다. 그래서 양들이 철쭉 젖꼭지를 먹으려고 하지만, 양치기는 이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철쭉꽃에는 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쭉은 한자로 머뭇거릴 척과 머뭇거릴 촉을 사용하여 '척촉'이라 한다. 양이 철쭉꽃을 먹고 싶어서 '머뭇거린다'는 뜻이다.


철쭉과 같은 속에 속해있고, 비슷하게 생긴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다. 심지어 술도 담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독이 있는 철쭉은 '개진달래' 또는 '개꽃'이라고 한다.


고도가 1200-1300 m에 이르자 드디어 철쭉 군락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곳의 철쭉은 새순만 나와 있고, 아직 꽃망울은 나오지 않았다. 개화하려면 2주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신갈나무도 이제 새잎이 돋고 있었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개엽 정도에 따라 소백산이 뚜렷하게 색으로 구분된다. 고도가 낮은 지역은 이미 개엽이 끝나고 잎이 성숙하여 진한 녹색이다. 그 위에는 밝은 연두색으로 이제 개엽이 막 마무리되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서 있는 곳은 아직 회색이 많다. 아직도 여기는 봄이 오지 않았나 보다.


나는 옆에 계시는 신 교수님에게 하필 이곳에 철쭉 군락이 있는지 물었다. 신 교수님은 소백산의 형성과정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화강암의 규소가 물에 녹으며 규산이 만들어지고, 규산이 많으면 산성 토양이 된다. 이런 토양은 거칠고 척박해서 박테리아도 제대로 살기 어렵다. 대부분의 나무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이런 땅에 흔히 나타나는 나무가 소나무와 철쭉이다. 이 나무들의 뿌리는 진균류와 공생하며 균근(mycorrhiza)을 형성한다. 뿌리 세포는 균류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균류는 나무뿌리가 무기영양소와 수분을 흡수하는 것을 촉진한다. 다른 나무는 산성토양이라 생존하기 어렵지만, 철쭉은 균류와의 공생때문에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소백산의 철쭉 군락지가 척박한 곳이라는 사실은 거기서 조금만 정상 쪽으로 올라가면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나무한계선(tree line)이 철쭉 군락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나무한계선 보다 높은 고도에서는 풀들만 있을 뿐이고, 바로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1439.5 m)이 보였다. 보통 나무한계선은 나무들이 견디기 어려운 추운 온도와 수분의 부족이 특징이다.


소백산의 정상에 도착하자 잠시 지나가는 우리들과 여기 사는 모든 생명체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어려운 점을 느꼈다. 소백산 정상 부근에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다. 실제 소백산 산행의 묘미는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칼바람을 받아내는 일이다. 북사면에 위치한 철쭉 군락은 매일 이 사나운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바람은 온도, 물, 햇빛 등과 더불어 생명체의 분포를 제한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거칠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이 어려움을 공생으로 극복하고 화사한 꽃을 피우는 철쭉이 사는 곳. 이게 나의 소백산의 첫인상이 되었다.



탐사일: 2016년 5월 14일

탐사장소: 소백산



상록수인 소나무의 진한 녹색과 바로 개엽한 활엽수의 연두색의 대조
철쭉꽃과 뒤영벌
철쭉꽃으로 아치를 이룬 산행갈에서 등산객들이 사진찍기 정신없다.
멀리 고도가 낮은 곳은 개엽이 끝나 녹색이고, 중간 고도는 이제 개엽이 진행되고 있어 녹색이고, 높은 고도는 아직 개엽이 진행되지 않아 회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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