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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May 03. 2016

김포공항습지를 사랑한 소년들

지난 몇 년 동안 수원청개구리 관련 행사를 마치고 나오면, 마치 스토커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단의 소년들이 있었다. 이들은 부천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김포공항습지를 탐사하고 있었다. 이제 곧 골프장으로 개발될 운명에 처한 김포공항습지의 중요성을 알리려고 찾아온 것이다. 아울러 수원청개구리도 이 김포공항습지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나는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이들과 같이 하지 못함을 미안해 했다. 이제 대학교 1학년이 되어 뿔뿔이 흩어진 이들은 이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 소년들과 같이 김포공항습지를 꼭 가보고 싶었다.

4월의 마지막 금요일 오후에 드디어 기회를 만들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소년들 중 한명과 김포공항습지의 보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중학교 교사와 함께 김포공항습지를 찾았다. 이 장소는 수원청개구리 탐사 때문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수원청개구리 연구는 주로 밤에 하기 때문에, 정작 이 곳의 낮 풍경은 낯설게 느껴졌다.

큰길에서 벗어나 한적한 길로 들어서자마자 황조롱이가 정지비행을 하면서 등줄쥐를 노리고 있는 장면이 들어왔다. 김포공항습지는 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언덕 위의 아까시 나무들이 병풍처럼 펼쳐있었고, 한창 새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미 많은 풀들이 무성하였고, 찔레나무의 잎이 무성하였다.

김포공항습지는 늘어나는 항공교통에 대처하기 위해 김포공항 인근의 토지를 매입함으로써 형성되었다. 그러나 인천공항의 개발로 인해 김포공항습지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는 햇빛에 무성한 풀밭, 연초록 나뭇잎, 아직 마른 갈대가 서로 어우러져 이 습지는 지금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가 습지를 산책하는 동안 연신 비행기의 이착륙 소음이 들려왔다. 이런 소음 속에서 골프를 치고 싶을지 의문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습지를 걸었다. 마주치는 곤충이나 거미의 사진도 찍고, 가끔씩 들려오는 꿩의 소리도 들었다. 이곳의 일부는 수풀과 물웅덩이가 있는 늪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장소는 수원청개구리의 최적의 서식지이다.

우리나라에는 두 종의 청개구리가 있다. 청개구리 노래는 '뺍뺍뺍~'으로 들리고, 수원청개구리 노래는 '챙챙챙,' '깽깽깽'으로 들린다. 우리나라 전역에 있는 청개구리와는 대조적으로 수원청개구리는 서해안의 평야지대에서 주로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수원청개구리는 노래하는 수컷의 수를 전부 셀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래서 수원청개구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이다.

수원청개구리가 멸종의 위기에 처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멸종위기종의 사례와 같이 서식지 파괴이다. 수원청개구리의 서식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과 일치한다. 내 추측에는 수원청개구리의 최대 서식지는 서울이었다. 서울의 위치는 현재 수원청개구리가 가장 많이 서식하는 지역들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수원청개구리의 가장 재미있는 특징은 벼를 부여잡고 논 한가운데서 노래하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청개구리는 논둑에서 노래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로 벼농사를 짓기 이전에는 청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는 서식지가 서로 달랐다고 생각한다. 청개구리는 주로 숲에 살면서 번식할 때만 숲 근처의 습지에 내려왔다. 이에 비해 수원청개구리는 늪과 유사한 서식지에서 1년 내내 지낸다.

이 두 종이 서로 마주치게 된 시기는 우리가 이 땅에서 논농사를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우리는 자연습지를 대부분 논으로 바꾸었고, 그 결과 두 종은 논에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두 종이 경쟁한다는 여러 증거가 있다. 청개구리는 해가 진 이후에 논으로 이동하여 노래한다. 그러나 수원청개구리는 이 보다 앞서 오후에 논으로 이동하여 노래를 한다. 무서운 조류 포식자가 순찰을 도는 낮에 이동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런 포식자의 위협을 무릅쓰고 낮에 이동해야 하는 이유는 더 절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절실한 이유는 번식이다.

수원청개구리는 청개구리가 없는 낮 시간에 노래를 하고, 짝짓기를 하려고 한다. 해가 지고 청개구리가 논에 몰려오면 수원청개구리는 논의 안쪽으로 이동한다. 논 안에는 흙과 같은 지지대가 없기때문에 어쩔수 없이 벼를 부여잡고 노래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우스꽝스럽게 노래하는 수원청개구리의 행동이 청개구리와의 경쟁에 밀려 논 한가운데로 쫓겨났고, 거기서라도 번식하려는 수원청개구리의 처절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김포공항습지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수원청개구리가 서식하는 장소이다. 아울러 이 소년들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소년은 약 보름 후에 찔레나무의 하얀 꽃들이 이 들판을 수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에는 덩굴과 풀이 우거져서 들어가기도 힘들고, 가을에는 주변 논들이 황금색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눈으로 하얗게 덮인 갈대밭이 있다고 회상하였다. 비온 다음 날에는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 발자국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을 탐사하는 날에는 새벽에 와서 하루 종일 김포공항습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탐사하다 피곤해지면 나무 밑에서 누워 몇 시간씩 자기도 한다. 소년은 고등학교 후배들이 다시 이 습지를 탐사한다고 들었을 때 너무 고맙다고 했다.

습지 탐사를 마무리 지을 즈음 우리는 이 김포공항습지가 지난 3월 이미 착공 예정이라는 안내문을 발견하였다.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된 이 청년은 안내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 청년의 어린 시절 추억도, 이 습지에 살고 있는 수원청개구리도 지킬 수 없는 내가 너무 초라했다.



이 글은 2016년 5월 3일 경향신문의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022108005&code=990100


탐사일: 2016년 4월 29일

탐사장소: 김포공항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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