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대지역에서 겨울에 활동하는 새들은 크나 작으나 한 가지 공통의 목표가 있다. 생존이다. 이 목표는 텃새나 겨울철새 모두 해당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들판에서 먹이를 찾아야 한다. 물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포식자의 위협도 항상 대비해야 한다. 이런 뚜렷한 목표를 가진 새들은 '혼종무리(mixed species flock)‘라는 재미있는 현상을 만들기도 한다.
많은 동물들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서 또는 먹이를 찾기 위해서 무리를 짓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움직이는 물고기 떼, 이솝 우화를 포함해 우리에게 수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해온 양떼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경우 보통 같은 종의 개체들이 모여서 무리를 만든다. 그런데 서로 다른 종들의 개체들이 어울려 살아가기도 하는데 이것을 혼종무리라 한다.
경기도 파주시의 공릉천 일대에서는 겨울철새의 혼종무리를 쉽게 탐사할 수 있다. 한강의 제1지류인 공릉천은 개발의 마수가 매일매일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비교적 자연스러운 하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물길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휘어 감기어 가고, 그 옆으로 수초와 갈대밭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또 바다와 가까워 염생식물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회색빛의 갯골도 발달해 있다.
공릉천 양 옆으로 추수를 마친 논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안에 기러기 떼들이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거나 차량이 지나가면 무리 전체가 공중으로 도망가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위협이 있던 반대방향으로 무리 전체가 이륙하지만 공중에서 다시 여러 작은 무리로 나뉜다. 작은 무리는 V자 모양으로 편대비행을 하면서 새로운 먹이활동 장소를 찾곤 하였다. 그런데 기러기 무리를 자세히 보면 크기가 다른 두 종류의 종이 있다. 몸집이 큰 큰기러기와 훨씬 작은 쇠기러기이다. 이 두 종은 낮에 먹이활동 뿐만 아니라 밤에도 같이 습지에서 유숙하는 단짝이다.
새들은 주로 포식자를 경계하기 위해서 무리를 형성한다. 무리가 클수록 보는 눈도 듣는 귀도 많아지므로 포식자를 미리 탐지하기 쉬워진다. 서로 다른 종의 새들이 혼종무리를 형성하는 이유도 포식자 경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경우 서로 보완적인 감각 능력을 가진 종들이 무리를 구성하여 포식자 경계를 향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얼룩말은 근시이지만 아주 좋은 청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기린이나 누는 시력이 아주 뛰어나다. 그래서 아프리카 들판에서 얼룩말은 기린이나 누와 같이 무리를 형성하기 좋아한다.
새들도 서로 다른 감각 능력을 가진 종들이 포식자 경계를 위해 혼종무리를 형성한다. 북미에 서식하는 ‘붉은눈 비레오(red eyed vireo)’는 나뭇잎에 붙어 있는 애벌레나 진딧물을 잡아먹기 때문에 근시이다. 그래서 이 새는 겨울 월동지에서 멀리 있는 물체를 잘 보는 노랑깃딱새(yellow-margined flycatcher)를 추종하여 무리로 들어가기 좋아한다. 또 비슷한 이유로 박샛과에 속하는 작은 새들은 원시의 시력을 가진 딱따구리를 파수꾼으로 이용한다.
혼종무리를 형성하는 또 다른 이유는 먹이활동의 효율성이다. 단짝 종의 개체를 이용하여 새로운 먹이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이미 먹이활동을 한 서식지를 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박샛과의 새들은 딱따구리가 쪼던 나무껍질로 가서 먹이를 찾곤 한다. 또 혼종무리의 종들이 서로 다른 먹이를 선호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먹이를 잡을 경우 먹이에 대한 충돌을 피할 수 있다.
혼종무리는 기본적으로 협동을 바탕으로 한다. 가족 구성원도 이해관계에서 충돌이 생길 경우 배신과 살상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물며 종이 다를 경우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면 무리를 형성하기 어렵다. 최소한 단짝 종의 존재가 손실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
2009년에 지난 75년 동안 발표된 새들의 혼종무리에 대한 논문들을 종합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의 결론은 새들이 한 종으로 구성된 무리에 있을 때보다 혼종무리에 있을 때 먹이활동의 효율이 올라가고, 경계 활동도 줄어들었다. 재미있는 점은 먹이활동의 효율이 올라가는 종은 혼종무리를 선도하는 종이 아니라 추종하는 종이었다. 추종하는 종은 대개 포식자의 위협에 훨씬 노출된 종이고, 혼종무리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포식자 경계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러면서 추종하는 종은 혼종무리에서 먹이활동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그럼 혼종무리를 선도하는 종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무엇인가? 혼종무리를 형성해 무리가 커지면 선도하는 종도 포식자 경계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포식자 경계와 먹이활동의 효율이라는 일거양득을 취하는 추종자와는 달리, 선도종이 혼종무리에 참여함으로써 엄청난 이익을 얻는 것 같지 않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선도종은 가족 구성원들이 어미를 대행해서 육아에 참여하는 ‘협력양육’이 발달해 있다. 이들은 주로 친족으로 구성된 무리를 이루고, 구성원 간에 의사소통이 잘 발달해 있다. 그래서 혼종무리의 선도종은 포식자를 잘 탐지할 수 있고, 포식자 정보를 구성원에게 빨리 전달해 줄 수 있다. 추종하는 종은 혼종무리에 참여하여 선도종의 포식자 경계의 혜택을 보는 셈이다.
아직 선도종이 혼종무리를 형성하는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선도종은 경계심이 뛰어나고 협동심이 뚜렷한 이웃이다. 그리고 이들의 따뜻한 역할로 많은 새들이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나는 것 같다.
이 글은 2017년 2월 6일자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06204901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