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월동 중인 꿀벌을 탐사하러 서울 동작구에 있는 보라매공원을 방문하는 날이다. 보라매공원은 나의 고향과도 같다. 학창 시절 집이 근처여서 늘 보라매공원으로 산책을 다녔다. 친구들과 같이 보냈던 추억이 깃든 장소이고, 군복무도 여기서 했다. 늘 가보고 싶었기에 25년 만의 발걸음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태워 주겠다는 제안을 사양하고 나는 신림역부터 걸어서 보라매공원으로 갔다. 길거리의 수많은 간판과 높은 빌딩들이 낯설게 들어왔다. 공원의 입구도 많이 바뀌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렵게 찾은 입구에는 ‘보라매공원’이라는 하얀 조형물이 있고, 그 앞에 노란 국화류의 꽃들이 잘 조경되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꽃들 사이에서 곤충을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11월 중순이지만 때 이른 한파에 밤에는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 거의 모든 곤충이 우리 눈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공원 내에 있는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의 추헌철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태양열 패널과 구획된 텃밭을 따라 깔려 있는 데크를 걸으면서 정원을 산책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말라서 아무것도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풀과 꽃들이 텃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보라매양봉장’이라는 현판을 지나 월동포장이 되어 있는 벌통들로 다가갔다. 꿀벌 한 마리가 입구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처음 본, 활동하는 곤충이었다.
옥상에서 벌통을 관리하는 분이 벌통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가만히 귀를 벌통 가까이 대었더니 웅~웅~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곧이어 즈~즈~ 하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곧 방충복을 입고 벌통의 개봉을 지켜보았다. 두꺼운 보온덮개와 비닐을 풀어헤치니 벌통 내부가 드러났다. 평상시와 같이 벌들이 벌집 위에 모여 있었지만 이들의 활동은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여름이면 벌통을 열자마자 많은 벌들이 왱왱 거리며 우리 주위를 돌았을 텐데 이날은 그저 몇 마리만 날아다녔다.
벌통을 관리하는 분은 벌들의 활동이 겨울철이라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벌집에 빼곡히 있는 꿀을 가리키며 벌들이 이 꿀을 먹으면서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한다. 더 보여줄 것이 없다는 듯이 이 분은 천천히 벌통의 뚜껑을 닫고 보온덮개와 비닐로 벌통을 꽁꽁 감쌌다. 마지막으로 벌통의 입구를 3㎝ 정도만 열어 두었다. 날아다니던 벌들은 하나하나 착륙하여 열어둔 입구로 들어갔다.
꿀벌을 관리하는 분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꿀벌의 월동이지만, 나에게는 벌통 내부에서 여름과 비교해 특별히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운 꿀벌의 행동이 경이의 대상이었다. 북반구의 온대지역에서는 가을이 되면 모든 생명체가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월동은 크게 추운 겨울을 피하거나(이주), 가사상태가 되거나(동면), 체액을 얼지 않게 하여 참고 견디거나, 열을 발생시켜 날 수 있다. 사람을 포함한 일부 포유류나 텃새들은 음식을 먹고 이를 소화하여 발생한 열로 월동할 수 있다. 일부 동물들은 체액을 부동액과 비슷하게 만들어 얼지 않게 하여 활동하면서 겨울을 날 수 있다. 또 철새들은 겨울을 피하기 위해 이주한다. 일부 포유동물 및 곤충과 같은 대부분의 무척추동물들은 동면을 이용해 월동한다. 이들은 대사활동을 줄여 체온을 낮추고, 잘 얼지 않는 장소에서 겨울을 보낸다. 장소를 잘못 선택하면 겨울 동안에 월동장소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기도 하고, 영원히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성충으로 월동하는 파리류의 곤충은 월동 중에 대부분 죽고 지극히 일부만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곤충들은 겨울에 꿀벌처럼 활동할 수 없다.
꿀벌의 월동도 다른 곤충들과 같이 10월 말이 되면 시작된다. 온도가 떨어짐에 따라 꿀벌들은 외부 활동을 줄이면서 벌통 내부에서 뭉치기 시작한다. 이들은 양쪽 날개를 서로 엇갈리게 날갯짓을 하여 열을 발생시킨다. 겨울에 벌통 밖에서 들리는 즈~즈~ 소리는 바로 꿀벌들이 무리를 덥히기 위해 발열하는 소리다. 벌통은 포유동물의 모피나 인간의 옷과 같이 추위로부터 꿀벌 무리를 격리시킨다. 꿀벌은 외부의 온도가 영하 17도까지 떨어져도 무리의 중심 온도를 18~32도 사이로 겨울 내내 유지한다.
꿀벌 무리가 크면 클수록 무리에서 발생한 열을 집적하기 쉽다. 무리의 외곽에 있는 꿀벌은 몸이 차가워지면 무리의 중심으로 파고든다. 외부의 온도가 낮아질수록 무리 중심의 온도를 높여 무리 전체의 온도를 유지한다. 그래서 꿀벌 무리는 먹이와 적당한 벌통만 있으면 마치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온도를 조절하여 겨울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꿀벌의 월동은 발열하여 그대로 겨울을 나는 포유류의 월동과 비슷하다.
발열을 이용한 월동의 장점은 이듬해에 곧바로 나타난다. 초봄에 식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꿀벌은 바로 먹이활동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다른 곤충들은 아직 알이나 유충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성충으로 월동하더라도 이듬해에 바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개체수는 아주 적다. 초봄부터 큰 경쟁 없이 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은 꿀벌이 열을 발생시켜 월동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 세계로 활동영역을 넓힌 꿀벌의 성공도 어쩌면 여기에 기인한다. 기온의 변화가 심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올겨울도 무사히 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쉬운 고향 방문을 마쳤다.
이 글은 2017년 12월 12일자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탐사기]에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