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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10. 2021

왜 청소년들이 춤을 추면 기쁜데 눈물이 날까

대안학교를 다닌다는 것(3)

졸업식 때문에라도 학교를 끝까지 다닌다는, 소문 자자한 길 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앵두가 너무 감동적이라며 작년부터 꼭 보러 오라고 했는데 이제야 졸업식을 처음 보게 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도 곧 졸업을 맞게 될 학부모여서 그런지 이상한 뭉클함이 있었다.


무대에는 올해 졸업을 하게 되는 여섯 명의 대숲 친구들이 멋진 옷을 입고 앉아 있었고, 재학생 두 명이 사회를 봤다. 영상을 통해 졸업생들이 길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보냈던 시간들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작고 귀엽던 아이들이 어느새 조금씩 커가며 자기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커다란 화면 속에서 사진 이미지로 지나갔다. 누군가는 학교를 나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들어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갔다가 들어오기도 했다. 5년이란 시간 동안 한 반으로 지내다 보니 지지고 볶고, 기쁘다가 슬펐던, 온갖 기억들이 오랜 필름을 펼쳐놓듯 지나갔다. 학교를 더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있었을 거고,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방황하는 시간도 많았을 거 같다. 당시에는 인생 최고로 힘들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돌아보니 이상한 추억 속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만큼 대단한 드라마도 없다.


길 졸업식에서 가장 인상 깊은 시간은 학생들이 한 명씩 자신의 인생 주제곡을 틀고 신나게 춤을 추며 무대로 입장하는 장면이다. 졸업생들이 이날을 위해 몰래 준비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친구는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노래에 맞춰서 선글라스를 쓰고 마이클 잭슨처럼 춤추며 등장했고, 또 다른 친구는 ‘써니’의 주제곡을 틀고 디스코 춤을 추면서 앞으로 당당히 걸어 나왔다. 홍일점 졸업생의 써니 음악에는 옆에 있는 다른 졸업생들까지 안무를 맞춰 더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자신만의 리듬과 몸짓으로 당당하게 무대로 걸어 나와 춤추는 아이들이 눈이 부시게 예뻤다. 왜 청소년들이 춤을 추면 기쁜데 눈물이 날까. 

졸업식이 끝을 맺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 앞에 놓인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자신이 알고 있는 박자로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곧 상영될 새로운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재학생들이 ‘이젠 안녕’이란 노래를 부르며 준비한 퍼포먼스도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화면에는 학교에서 졸업식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한 명씩 비췄고, 재학생들은 졸업생들에게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라고 씩씩하게 들려줬다. 노래 간주가 흘러나올 때, 아이들이 졸업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플래카드를 파도타기 하듯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괜찮아’, ‘응원해’, ‘고마워’, ‘사랑해’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50여 명의 목소리들이 긴 메아리처럼 강당에 떠올라 졸업생들의 등을 힘껏 밀어줬다.


그리고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한 졸업생 친구가 소감을 말하던 순간이었다.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심사숙고해서 찾아낸 수식어를 느리게 말하던 순간, 모두가 한 단어 한 단어를 귀 기울이던 그 공기가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다. 그 침묵과 단어들이 따뜻한 시선 속에서 아무 조바심 없이 고요하게 머물던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우리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눈가에 담긴 촉촉한 온기를 훔칠 수 있었다.


졸업은 했지만, 삶은 계속된다. 그 삶에 모든 용기를, 모든 응원의 박수를, 모든 행운과 기도를 함께 보낸다. 5년의 시간이 어쩌면 뭔가를 만들고 쌓아갔던 시간이 아니라, 실험과 같은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온갖 실험과 실패 속에서 뭔가 다른 세상을 보고 경험했던 시간, 아마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는다.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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