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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10. 2021

그런 일은 절대로 내게 일어나지 않을까?

삶을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해

몇 달 전에 딸이 갑자기 “엄마, 트랜스젠더가 무슨 뜻이야? 남성이 여성이 되려고 수술하는 걸 말하는 거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마도 최근에 考변희수 전 하사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면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원래 뜻이 있을 텐데…” 정확한 뜻이 궁금해져서 스마트폰으로 트렌스젠더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

“자신의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자신이 반대 성의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출처:두산백과)

이 정의는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나의 성별을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없었듯이, 트랜스젠더도 어떤 성적지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떠올릴 때 그냥 자신의 성을 바꾼 사람이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견을 단숨에 깨부순다. 나도 그 뜻을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도 질문조차 해보지 않고 손가락 터치 한 번만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당연한 이해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던 거다. 좀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다 그저께 그것이 알고싶다 ‘오롯한 당신에게–考변희수 전 하사가 남긴 이야기’ 편을 봤다. 매시간 새로운 포털 뉴스들이 업데이트되는 속도만큼 순식간에 잊히는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멈춰서 들여다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깊이 느낄 수 있는 방송이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도 궁금한 것이 많은 딸이 평소 그알을 챙겨본 덕분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전혀 모르고 있던 세계에 대해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과 무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실 그 사건에 대해서 뉴스 조각으로만 띄엄띄엄 알고 있어서, 주위의 어떤 분들이 편견을 갖고 얘기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도 제대로 반박도 못한 적도 몇 번 있어서 진짜 알아야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색안경을 제거하고 처음으로 보게 된 변희수 하사는 그저 유능하고 재능있는 평범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군 병원에서의 진단을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후, 군 직속상관들의 승인이라고 볼 수 있는 한 달짜리 휴가와 응원 메일까지 받고 시행했던 성전환수술을 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삶은 순식간에 추락해 있었다. 촉망받는 군인이란 정체성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만이 커다란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영민하고 밝은 변희수라는 사람을 우울하고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만든 건, 성전환수술이 아니라, 사회와 군중들의 차별적인 시선이었다.


방송을 통해 나온 많은 트랜스젠더 분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그저 우리를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해 달라’는 정말 너무나도 소박한 외침이었다. 내 성별로 된 주민등록증을 갖고,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사회에서 내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것. 그냥 그게 다였다. 그때 기자회견을 하던 변 하사가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지 알 거 같았다. 한 사람이 이 사회에서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시민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너무나 단순하고 절실한 목소리를 그냥 우리 관심 밖의 일들로 무시했던 거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건 이게 내 삶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생각해서일 거다. 그런데 진짜 성소수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일까?


영상 끝에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 한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는 부모님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아들 딸들은 모자이크를 했지만, 대부분 부모님들이 당당하게 모자이크 없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아마 부모들은 내 자식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꽤 힘들었을 것이고, 그 후에 아이가 사회에서 겪는 온갖 차별과 폭력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엄마아빠는 내 자식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서 목소리 냈다. 부모님들의 마음을 상상하니 목이 메어왔다. 문득 ‘어쩌면 그 외로운 자리가 얼마든지 내 자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스쳤다. 만약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고백하면 나는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어떤 고통을 겪게 될까. 저분들이 헤쳐가는 어려움을 감당하며 나도 저분들만큼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인권은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권리가 아니라, 결국은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한 안전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눈물은 돌고 돌아 어느 순간 결국은 나의 눈물 차례까지 올 수 있다. 내 아이가 또다시 세월호 같은 배로 수학여행 갈 일은 앞으로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까? 내 아이가 성소수자로 커밍아웃 하는 일은? 그런 일은 절대로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까. 혹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내가 불길하게 얘기한 걸까?


SNS를 보면 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많은 정성과 애를 쓰며 좋은 양육과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많은 부모를 보게 된다. 훌륭한 일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고, 그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다는 걸 알기에, 그 힘든 일을 해내는 것도 대단한 일이란 걸 안다. 하지만 지난주 그알을 보면서 내가 문득 느낀 건, 내 아이가 잘 살 수 있도록 아무리 노력해도,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어쩌면 내 아이도 잘 살아내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혹시 우리 사회는 ‘정상’이란 목표를 향한 불안과 공포로 작동되는 세계는 아닐까. 혹시라도 내가, 혹은 내 아이가 그 차별과 편견의 대상으로 굴러떨어질까 봐 안간힘을 다해 매달려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존재라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일은 어쩌면 우리 모두를 그 불안에서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하지 않을까. 내 아이가 어떤 일을 해도, 어떤 성적지향이 있어도,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우린 어쩌면 아이들과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일은 없는 사회에서 조금 더 편안하고, 조금 더 행복하게 현재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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