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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10. 2021

우정이란 가면을 쓴 폭력

며칠 전 동네를 산책하고 있는데, 멀리 체구가 작은 중학생이 머리채를 잡힌 채 한 친구에게 끌려가는 실루엣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어서 설마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덩치 큰 후드티 남자아이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작은 아이 머리채를 잡고 계속 끌고 간다. 아이를 멈춰 세워서, 지금 길에서 뭐 하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큰아이는 황당해하며 손을 놓고는 “아줌마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너무 뻔뻔한 말투에 나도 살짝 당황해서 ‘여기서 지금 뭐 하냐. 빨리 집에 가라’는 말 먼저 튀어나왔다. 고개를 든 작은 아이는 살짝 코피까지 나온 상태다. 그 아이들은 친구 사이인 것 같았는데, 뒤에 오는 친구들도 같은 무리인 것 같았다. 작은 아이는 말리는 내가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는지, 지나가던 다른 친구들 무리로 뛰어갔다.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인상착의를 말해주고 혹시 아는 친구냐고 물어보니, 작은 아이는 굉장히 재밌고 웃기는 친구인데, 아마 뒤에 있던 그 아이들은 같이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이었을텐데 그런 일이 있었냐며, 좀 놀라는 눈치였다.


솔직히 그 장면을 보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던 이유는, 내 아들 버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내 아이도 학교에서 덩치 큰 친구들한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 가끔 교복 단추가 뜯어져서 오거나, 슬리퍼가 바꿔서 오길래, 친구들끼리 장난을 심하게 치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로 어울려 다니는 무리에서 힘센 친구가 장난친다는 핑계로 자꾸 머리를 때리거나 괴롭히고 있었다. 당하는 아이가 울거나 힘들어해도 그게 남자 친구들끼리의 장난이라는 이유로 넘어가게 되면서 점점 강도가 세지니, 아이가 남몰래 힘들어하고 있었던 거다. 다행히 그땐 담임 선생님이 먼저 발견하고 전화를 주셔서, 학폭위로 접수를 하자고 말해주셨다. 버찌는 성격이 온화해서 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있는 편인데, 같이 노는 친구 그룹 안에서 서열이 생기면서 힘센 친구가 체구 작은 친구를 자꾸 괴롭히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때 학폭위가 맞는 것인지 조금 망설이면서도 학교에 보내는 긴 편지를 썼다. (혹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부모가 글을 써서 사건을 정확히 기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나중에 다른 사례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 글을 읽은 후, 학년 부장 선생님이 전화를 주셔서, 이 사안이 학폭위까지 올라가진 않겠지만, 접수하고 그 전 단계까지 가는 과정을 거쳐야 가해 아이들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닫게 될 것 같다고 말해 주셨다. (그 단계까지 한번 갈 경우, 만약 다음에 똑같은 이유로 사건이 접수되면 바로 학폭위 올라가 가중처벌된다고 했다.)


나는 버찌에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같이 모이는 회의가 열릴 거고, 그렇게 되면 니가 놀던 친구들과 사이가 어색해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 아들, 많이 힘들었겠다” 말하며 등을 토닥이자, 무뚝뚝하던 남자아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왜 더 일찍 알아채고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았었나,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훌쩍 큰 아들을 꼭 안아줬다.


그리고 며칠 후 가해 학생과 부모, 피해 학생과 부모가 모이는 회의가 열렸다. 다행히 그때 썼던 내 편지가 효과를 발휘해서 그 글을 복사해서 함께 읽고, 가해 아이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 왜 교육적으로 중요한 시간인지 느끼시는 것 같았다. 가해학생 학부모들은 맞벌이하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해 주셨고, 두 명의 아이들도 어색하지만 나름 진심이 담긴 사과의 편지를 전하고 많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부장 선생님은 사과편지를 받고 마음이 좀 풀어졌냐고 버찌에게 물어봐 주셨고, 아들은 그렇다고, 괜찮아졌다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나는 회의에 가기 하루 전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계속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어서, 아이와 함께 학교 밖을 나오자마자 그제야 긴장이 풀어졌다.


솔직히 난 이런 상황 자체가 너무 슬펐다.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는지, 알게 모르게 서열이 생기고, 그 힘을 마음대로 이용하는 일이 생기는지 좀 서글퍼졌다. 왜 자신보다 강한 친구들 앞에서는 비굴하게 굴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친구이거나 마음이 선량한 친구에겐 비열하게 구는 걸까. 친한 친구가 우는 모습을 보고도 왜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던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같이 어울리면서 노는 친구들 사이에서 왜 일상의 폭력과 공격적인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걸까. 지금 학교 조직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친구란 어떤 의미일까. 학교에서 진짜 아이들한테 필요한 배움은 교과서를 외우게 하고 그걸로 자연스레 서열이 매겨지는 교육은 아닐 텐데... 온갖 씁쓸한 생각이 몰려왔다. 10대 시절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친구 관계에서조차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받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참 사는 게 재미없겠다...


때론 학교 다닐 때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때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돌림노래에 귀를 막게 되는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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