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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May 11. 2021

딸과 엄마, 그리고  나의 이야기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고

 한 여성의 딸이자, 10대 딸의 엄마이기도 한 나에게 영화 <레이디 버드>는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공감할 부분이 많은 영화였다. 엄마와 딸의 깨알 같은 에피소드들이 실제로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했고, 나와 딸이 늘 싸우던 레퍼토리기도 해서 한참을 웃기도 했다. (진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더니, 말싸움하던 틈바구니에서는 세상 진지했던 상황들이 스크린으로 재연되니 그렇게 유치하고 코믹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젊은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펼쳐내는 10대 소녀의 일상, 엄마와 딸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레이디 버드>는 생동감이 넘친다. 왜 더 많은 여성이 창작활동을 해야 하는지, 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지 이 영화를 보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국적도 시대도 다르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이 그리는 사춘기 딸과 엄마의 관계에서 25년 전의 나와 엄마, 중년의 나와 지금 내 딸의 일상들이 많이 겹쳐 보였다.      

영화 '레이디버드' 스틸컷

영화의 주인공은 ‘크리스틴’이란 이름이 버젓이 있지만 ‘레이디 버드’란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 달라고 말하는 고등학교 졸업반 소녀다. 현재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향의 인물을 꿈꾼다. 연극배우 오디션을 보고, 전교회장에 도전하고, 수학경시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모두 재능과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기표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레이디 버드를 바라보는 엄마는 허황된 꿈만 좇는 딸이 현실성 없이 허영심만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여, 괜히 잔소리만 늘어난다. 그리고 레이디 버드는 자신에 대한 기대조차 없는 듯한 엄마의 태도에 자꾸 반항심만 생긴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 모녀간 싸움에 주된 도화선은 늘 경제적인 이유였다. 아버지의 실직 이후, 간호사로 일하는 엄마의 주된 포커스는 어떻게든 생계를 버텨나가는 것에 맞춰졌고, 자기애가 강한 레이디 버드는 학비가 비싸도 동부의 사립 대학교에 가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고 싶다. 엄마는 집안의 경제적인 여건을 무시하고 가능성 없는 재능에 투자하려는 딸이 이기적으로 보이고, 딸은 자기 존재를 무시하는 것 같은 엄마의 태도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영화 속에서 딸과 엄마가 시시콜콜한 일들로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이 어찌나 공감됐는지 모른다. 자기 주제를 모른다는 엄마 말에 흥분해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던 딸의 충동적인 행동, “지금까지 너한테 들어간 비용이 얼만지 아냐”는 말에 “얼만데? 여기 다 적어봐.”라고 연필과 종이를 가져오던 딸의 불같은 마음을 나도 안다. 아마 그런 말을 나도 엄마한테 했던 것 같고, 엄마로서 나도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다. 성격이 비슷해서 그런가, 엄마랑 딸은 진짜 불같이 싸우다가, 다음 날 되면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붙어 다니는 묘한 관계다. (서로 감정이 안 좋은 상태로 옷가게에 가서, 동시에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곤 소리치는 장면도 ‘진짜 맞아맞아!’하며 박수 치며 봤다.)

  

영화 '레이디버드' 스틸컷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두 모녀 성격이 진짜 안 맞아서 매일 싸운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두 사람 성격이 많이 닮았다는 게 눈에 보였다. 예술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미적 취향이라든가,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마음이 따뜻하다는 특징도 비슷하다. 아마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다면 엄마와 레이디버드는 싸울 일이 거의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모든 엄마들은 내 자식이 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다 해주고 싶어 하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마도 딸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펼칠 수 있기를 누구보다 원할 거다. 그저 엄마는 인생을 조금 더 오래 살다 보니, 각박한 세상에서 예술로 꿈을 이루기보다는 상처받을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고, 딸이 미래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랐을 거다. 그리고 한편으로 엄마들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미안함을 나는 안다. 지금 경제적 여건에서 부모로서 딸이 원하는 것을 선뜻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을 것 같다. 딸은 또 다른 자기 자신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정작 엄마가 화가 나고 실망했던 대상은 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을 거다. 그러니 남에게는 그렇게 따뜻하지만, 딸에게는 모진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괴롭히고 있던 거다.

    

영화를 두 번째 봤을 때, 그렇게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 많이 보여서 괜히 마음이 먹먹했다. 딸이 남자 친구네 집에 입고 가려고 준비한 옷을 한밤중에 수선하던 엄마 모습, 추수감사절 밤에 딸이 부엌에서 친구들과 쾌활하게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엄마의 얼굴. 그렇게 포커스 뒤의 배경으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제야 사랑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학교 수녀님은 레이디버드에게 “사랑과 관심은 같은 거 아닐까?”라고 묻는다. 이 표현은 엄마의 마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그를 오래 관찰하고 지켜보면서 말하지 않아도 내 아이가 좋아하는 취향과 행복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레이디버드가 문득 엄마에게 “나를 사랑하지만, 좋아도 하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이 모습이 내 최선의 모습이어도 엄마는 날 좋아하냐?”’는 질문에 엄마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 영화를 보고 나도 그 질문을 나에게 한 적이 있었고,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그 말이 성립될 수 있는 묘한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가 하는 모든 것을 좋아할 순 없지만,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여 응원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순간도 있고 좋아할 수 없는 순간도 있겠지만, 계속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여서 마음을 쏟는 관계. 그런 관계를 인정한다면 부모 자식 사이가 참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마지막에 드디어 레이디 버드는 그렇게 원하던 동부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고 고향을 떠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짐을 풀고, 새로운 사람들을 자유분방하게 만나며, 원하던 인생을 살게 될 거란 기대와 달리 삶은 생각보다 실망스럽고 허전하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발길 닿는 대로 간 곳은 성당. 그녀는 학창시절 내내 빠져나오고 싶어 했던 그곳을 어느새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제야 ‘레이디 버드’로 불리고 싶었던 소녀는 ‘크리스틴’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왠지 친구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웠던 집, 사소한 나의 취향들, 잘나가진 않지만 나와 말이 통하는 친구, 사람들이 이름도 잘 모르는 고향, 그런 것들의 토대 위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크리스틴은 운전을 배운 후, 석양이 지는 고향 거리의 풍경을 처음으로 눈에 담게 된다. 그건 그녀의 엄마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잠시 누릴 수 있었던 동네 풍경의 아름다움이었다. 영화는 운전하는 크리스틴과 엄마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겹쳐놓는다. 앞으로 크리스틴이 보게 될 풍경도 아마도 그녀의 엄마가 봤던 풍경일 것이다. 다른 시차로 그 길의 커브를 돌면서, 나는 어떤 시간에 내가 철없이 했던 모든 것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때의 엄마를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 딸이 가게 될 불안정하고 두려운 길들이 보인다. 그 드라이빙에는 때론 실망도 있고,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크리스틴과 엄마는 그 풍경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관계다. 내가 느끼는 것을 그녀도 느꼈다고 생각하면 왠지 조금 덜 외롭다. 낯선 이 풍경 앞에서 조금은 두렵게 서 있지만, 먼저 이 길을 지났던 한 여성이 그 시간을 이겨냈던 것처럼 나도 버텨낼 수 있다.


크리스틴이 부모님께 보내는 “고맙다”는 말은 나를 나로 존재하게 만들었던 한 시절에 보내는 기쁜 굿바이 인사다. 그녀는 아마 고향에서 만들어졌던 자신의 토대 위에,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발 딛고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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