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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20. 2021

지극한 현실주의자에게 주는 위로

영화 <머니볼> 이야기

 <머니볼>은 야구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경기장의 환희가 아니라 어두운 모니터실의 묘한 쓸쓸함을 보게 해주는 영화다. 여기에는 다른 스포츠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웅도 없고, 짜릿한 역전의 순간도 없다. 이 영화는 가난한 야구단 애슬래틱의 단장인 빌리(브레드 피트)가 적은 운영비용으로 영입할 수 있는 선수들을 모아 외인구단 같은 팀을 만드는 뻔한 장르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방점을 다른 곳에 찍는다. 이 작품에서 관객들은 끈끈한 동료애와 역경을 이겨낸 휴머니즘적인 감동 대신에 삶의 고단함을 본다. 실패에 늘 적응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매번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빌리의 냉정한 분투 속에는 어느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지극한 현실이 겹쳐져 있다.

미국 프로야구계는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온갖 찬사를 동원해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다가도 시즌 마지막 경기에 지면 다들 유령 취급하며 언제 봤냐는 식으로 등 돌리고 마는 것이 이 동네 풍경이다.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진은 그 야구계의 생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승리에는 크게 열광하지 않지만, 패배는 심하게 앓고 만다. 이 영화는 의외의 홈런을 치고 승리했던, 그나마 가장 극적으로 묘사한 경기조차도 기록화면의 정적 속에 브레드 피트의 내레이션으로 냉정히 마무리 한다. 빌리의 말을 빌리자면 연속 20승을 했지만, ‘이겼으면 된 거’지 ‘그게 뭐’ 인거고, ‘팬들을 즐겁게 하고, 티켓과 핫도그도가 왕창 팔릴 뿐. 다른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는 승리의 거추장스런 장식들이 다 사라진 후에도 어김없이 다시 돌아올 경기를 준비해야하고, 더 이상 패배하지 않기 위해 매년 치열하게 분투해야 한다. 그에게 마운드는 꿈의 구장도 자아실현의 장소도 아니고, 어떻게든 조직을 이끌고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 같은 직장이다. 오늘 낙오하지 않은 대가로 딸아이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아이에게 기타를 사주고, 디저트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전화로 묘기를 부리듯 팀원들을 트레이드 시키고 있지만, 기실 그 자신조차 언제든 퇴출위기에 놓인 계약직 단장일 뿐인 것이다. <머니볼>에 나오는 승리의 순간들은 빌리의 성격처럼 그렇게 어떤 허세를 부릴 틈조차 주지 않고 딱 그날 하루를 살아갈 만큼의 빵을 손에 쥐어 준다.


영화 속에서 빌리가 큰 모험을 선택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선수의 가능성이 아닌 과거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팀원들을 캐스팅 하는 머니볼이론 자체는 오히려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가능성과 직관, 이미지에 근거해 우연과 요행을 기다리던 야구계의 관행을 뒤집어, 빌리는 일단 최악을 상상하면서 숫자와 통계로 계산된 1점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홈런이란 드라마에 승패를 걸기보다는, 볼넷으로라도 어떻게든 1루를 지키는 느린 길을 택한다. 연봉 높은 스타선수에 의지하지 않고도 가난한 팀이 우승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빌리의 본질적인 소망은 사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지독한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를 소모시키며 한 점 한 점, 과정으로 얻게 되는 승리는 9회말 투아웃이 되어도 도저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야구라는 불안정한 스포츠에 대한 본질적으로 무모한 도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슬래틱팀의 승리조차도 기록화면으로 씁쓸하게 묘사하는 <머니볼>의 연출은 되돌이표처럼 계속 반복되는 인생이라는 긴 시합을 바라보는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에 홈런을 치는 기록화면을 보고, ‘이래서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라고 말하는 빌리의 말이 여운을 갖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야구는 환상이 없는 게임이다. 2루를 두려워하는 뚱뚱한 타자는 자신이 홈런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1루마저 지키지 못할까봐 우스운 몸짓으로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살아낸다는 것의 현실이다. 축구와 농구처럼 골인을 확인하자마자 환호할 수 없는 야구는 한시도 선수들을 느긋하고 멋지게 놔두지 못한다. 단 1초 후의 일도 예측할 수 없어, 1루라도 버티기 위해서 일단 달려야 한다. 그 에누리 없이 정직한 치열함이 빌리를 그토록 야구에 매혹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시합 날, 차마 팀 경기를 지켜보기 힘들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빌리의 얼굴에 진 근심과 환희의 양가적인 표정처럼, 인생이란 긴 경기 앞에서 인간은 그저 속수무책이다. 일희일비가 무색할 만큼, 의지와 상관없는 실패와 성공의 조각들은 교대로 우리 곁을 통과하고 만다.


이 영화는 그 가시적인 승패의 뒤꼍을 늘 홀로남아 지켜보던 한 중년남자의 뒷모습과 쓸쓸한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야구계에 몸 담아 왔지만, 여전히 빌리는 실패를 지켜보는 것이 두렵다. 선수들 앞에서는 승리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말하지만, 아무도 없는 체력단련장이나 차 안에 홀로 남아서는 여지없이 몰래 감추어 놓았던 불안과 대면하게 된다. 그렇게 꾹 눌러 담아온 마음의 응어리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빌리의 딸이 녹음해 준 노래를 듣다가 무방비로 터져 나올 때, <머니볼>은 보는 사람들까지 묘한 카타르시스에 같이 동요되게 만든다. 승패에 통달 한 듯 보이는 빌리처럼 우리도 상처에 익숙한 듯 능숙하게 살고는 있지만, 매번 길을 잃은 아이처럼 사는 게 두렵고, 여전히 인생이 미로 같기만 하다.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고 그럴싸하게 폼 잡아 봐도, 누구든 사랑 앞에서는 항상 바보가 될 뿐이다. 그 노래는 ‘just enjoy the show(그냥 쇼를 즐겨요)’라며 몇 번을 말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빌리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루저야’ 라고 읊조리는 딸의 경쾌한 목소리가 차안에 울리는 순간, 빌리는 그가 평생 받을 수 있는 위로의 전부를 다 받았을 것만 같다. 어쩌면 빌리가 진정으로 즐기고 싶었던 쇼는 애슬레틱의 우승이 아니라, 기타 치는 딸의 목소리가 흐르는 소박한 무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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