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선샤인' 이야기
늘 똑같은 아침. 그저 그런 일상. 어떤 생각도 어떤 감흥도 없는 허무한 하루가 또 시작된다. 흐릿한 빛 속에 한 남자가 눈을 뜨고, 이불을 걷어차며 일어난다. 공황상태, 어제처럼 아무것도 기대할 것 없는 일상이 시작되는 아침만큼 또 무서운 것이 있을까.
영화<이터널 선샤인>은 주인공 조엘(짐 캐리)이 너무나 평온해 오히려 질식할 것 같은 방에서 아침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 왜 그런지 모르게 불쑥 화가 치미는 출근길, 조엘은 충동적으로 회사가 아닌 몬테크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몬테크의 겨울바다에서 오렌지색 점퍼를 입은 한 아가씨를 계속 마주치게 된다. 적극적이고 생기발랄한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보고 조엘은 또 주책없이 설렌다.
사방이 꽉 막힌 일상의 틈을 비집고, 어디선가 눈부신 빛이 마음을 비춘다. 그제야 우리는 온 감각을 곤두세워 생의 체취 하나하나 그 떨림까지도 감지하기 시작한다. ‘연애’는 그렇게 더는 버틸 수 없는 일상에 찾아온 기적 같은 선물이다. 사람들은 설레어 잠을 못 이루고 어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다. 어린아이가 창가에 비치는 햇살에 눈을 뜨자마자 세상이 처음 시작된 것 마냥 신나 놀기 바쁜 것처럼 연애를 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다시 아이가 된다.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인생의 지루함이라는 괴물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아이가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듯, 생의 반복을 마치 영원인 것처럼 즐기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 초반 조엘과 클렘의 만남은 기억을 지운 그들이 다시 그 지난한 연애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몬테크의 바닷가, 오렌지색 스웨터, 찰스 호수...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엘의 기억을 엿보던 관객들은 처음 그 상황들이 똑같이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마 처음이 그러했듯이 두 번째 만남도 권태에 못 이겨 허덕이게 되고, 결국 누군가 도망치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연애란 조엘과 클렘이 가던 찰스 호수의 얼음처럼 불안정한 토대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무섭고 두렵지만 일단 걸어가 보는 것. 여러 종류의 관계가 다 그렇지만 특히나 연애관계는 결국 그 두려움을 견디고서라도 상대방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는 것이다. 언제 추락할지도 모르는 토대 위에 누워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순간, 비로소 찰나의 안식을 경험하게 된다. 그제야 내 자리를 찾은 것만 같다.
조엘과 클렘의 이야기는 조엘의 기억이 최근의 것부터 지워져 가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들의 권태기를 지나서 거꾸로 조엘과 클렘의 사랑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순간을 지나게 된다. 분명 결말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조엘의 기억 한복판에 들어가 그의 심정으로 섬광 같던 기억의 한 조각이라도 붙잡아 놓고 싶어진다.
결국 추억 또한 무한히 반복되는 기억의 파편에 불과할지라도 어떤 사람에게 그 순간만은 영원과 같은 시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순간 연애는 늘 똑같은 아침을 영원으로 바꿔주는, 어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이 된다. 그것이 비록 끊임없이 반복하는 실수일 지라도, 내가 있어야할 자리를 찾아 오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이 직면한 한계인 동시에 또 전부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조엘은 기억이 어쩔 수 없이 지워져 가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보며, 그 순간마저도 그저 즐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을 떠나보내면서, 사랑과 미움이 뒤범벅 된 과거의 추억들과 비로소 화해한다. 이것은 폭풍 같은 격정에 전부를 걸던 사랑이 다 지나간 후 한참이 지나서야 그때를 돌아보며 그 순간을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시선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랑은 그 시간이 다 지나간 후에야 제대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질리도록 잊고 싶던 기억들은 어느새 잊혀지고, 가슴속에서 아껴두고 차마 꺼내놓지도 못한 아릿한 추억들은 더 선명해질 테니까. 마치 티 없는 마음에 영원한 햇살이 비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