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야기
늘 첫사랑의 타이밍은 묘하게 어긋난다. 고백은 제 때 도착하지 못하고 너무 이르거나, 뒤늦게 도착해 공중에 붕 떠버리고 만다. 그 사이의 시간은 한참이 흘러 아련하고 저릿한 그리움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겠지. 그 시절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정확한 타이밍에 그 고백과 만날 수 있을까.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는 우연히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소녀(마코토)가 푸딩을 먼저 먹는다던가, 노래방 시간을 늘리는 사소한 일들로 그 능력을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게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친구로 지내던 치아키의 고백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타임리프를 사용해 마코토는 그 고백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어쩐지 계속 신경이 쓰인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코 없던 일이 되지 못한다. 친구 유리가 치아키와 사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더욱 마코토의 마음은 씁쓸할 뿐이다. 그렇게 치아키와 헤어진 후, 마지막 단한번의 타임리프 기회를 얻게 된 마코토. 다시 치아키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던 그 장소 그 시간에 서 있게 되는데, 다시 듣고 싶던 그 말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저녁노을과 강가의 구름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 자전거를 타고 가는 커플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마코토는 그 아름다운 풍경에 혼자 남겨져 엉엉 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유쾌한 설정들에 웃다가 마지막에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순간의 아련함이다. 단지 ‘네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기꺼이 가장 약하고 비참한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되는 순간은 삶에서 몇 번 오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게 피하던 전화, 말없이 발걸음을 돌렸던 순간들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수많은 의미들로 되살아나 기억 속에 재생된다. 그리고 마코토처럼 뒤늦게 강가어귀에 홀로 남아 후회를 되뇐다. 차마 할 수 없었지만, 그녀처럼 마냥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싶었던 어떤 날들을 떠올린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잊고 지났지만, 몇 번이고 다시 소환되는 그 풍경 그 시간을 다시 펼쳐본다. 아주 잠시 저녁노을이 만드는 마법 같은 하늘빛 순간처럼, 날카롭게 스쳐지나간 한 시절은 짧아서 아름답다.
어긋나던 그 시간들을 통과하며 우리는 조금 더 성숙했고, 소중한 것들이 더 이상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래서 기다리는 대신 뛰어간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당신을 빨리 보기위해 숨이 차도록 뛰어간다. 마법과 판타지는 없지만, 마지막으로 치아키를 만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던 마코토가 견뎌내는 호흡의 한계처럼 사랑도 어떤 시간을 견뎌내는 것임을 어렴풋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