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과 게임전쟁 후
우리 집 막내아들은 본래부터 순딩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 욱하는 기질이 조금씩 있는데, 이 아이는 늘 집안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였다. 가족들 친구들과 싸움 날 일을 거의 만들지 않고, 주변에서 갈등이 생기면 본인이 더 괴로워서 뜯어말리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유미의 세포들' 전시회 가서 나온 자기 프라임 세포마저 '마음의 평화사절단'이었다.
그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온순한 녀석에게 찾아온 사춘기는 스마트폰과 게임시간을 둘러싼 전쟁 때문이었다. 모든 것에 예민하지 않은 애가 유독 게임할 때 방에 들어가거나 게임 좀 그만하라고 말할 때면 날카로워지는 거다.
어젯밤에도 오랜만에 컴퓨터 게임 때문에 트러블이 있었다. 자전거에서 넘어져 쇄골 골절 수술받은 이후 두 달 만에 게임을 했고, 한번 친구들과 게임을 시작하니 밤 11시 넘어서까지 게임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거다. 이번 주는 아이가 학교 등교하는 날이어서 일찍 자야 할 텐데, 한숨이 밀려왔다. '전쟁이 다시 시작됐구나' 싶었다. 방에 들어가서 이 판만 끝나면 그만 끄고 나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던 거 같은데, 아이를 딱 보니 흥분 상태다. 이건 아니다 싶어 또 종이에 컴퓨터 사용 규칙 환기하는 글을 종이에 적어 침대에 올려놨다. 그리고 꾹 참았던 말을 좀 했는데, 역시나 아예 듣기 싫어한다.
더 얘기하다가는 화가 날 거 같아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딴 걸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씻을 준비를 하면서 한 마디 한다.
"엄마, 오늘 게임 너무 재미있었어. 오랜만에 하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엄마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지금도 즐거워."
그렇게 얘기하니 갑자기 좀 미안해졌다.
'내가 너무 내 생각에만 꽉 막혀서 그 시선으로만 얘를 바라봤구나. 얘도 두 달 만에 컴퓨터 게임을 처음 했으니 얼마나 신났을까. 얼마나 더 하고 싶었을까. 아이가 즐겁고 신나는 감정 자체를 내가 완전히 부정했구나.' 아차 싶었다.
육아 TV 프로그램이나 심리학 서적에서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이야기를 맨날 보면서, 이걸 실제상황에서 적용하는 건 또 새로운 영역이었던 거다. 어른이 어떤 방향으로 아이를 이끌어주는 걸 견지하는 건 맞지만, 거기에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이가 느끼는 감정 자체는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 내가 기쁘고, 슬프고, 억울한 어떤 감정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면 사람은 자기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에 휩싸인다는 것.
약속과 달리 평일날 게임을 3시간이나 한 건 잘못이지만, 내가 간과했던 건 아이가 오랜만에 게임을 해서 신났고, 그 즐거운 기분 자체를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지 못했던 거였다. 어젯밤에는 남편과 너무 좁은 시야에서 '애가 게임만 하면 정신줄을 놓는다'는 편견에만 가득 차 있었는데, 진짜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 말대로 두 달 만에 컴퓨터 게임을 처음으로 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분할 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자신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는데, 엄마 아빠는 자기감정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고 지적질만 하니 좀 억울했을 것 같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건, 너무 자기 세계관이 견고해서, 자기 생각과 판단을 조금이라도 바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소통하기 어렵다는 거다.
어제 또 하나 배웠다. 일단 아이한테 뭔가를 지적하더라도, '오늘 많이 재미있었구나'라는 말부터 건네면서 아이의 즐거웠던 마음은 일단 인정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다음에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내도 늦지 않겠구나. 감정 자체는 인정하고, 이성적으로 왜 늦게까지 게임을 하면 안 되는지 이야기해도 큰일 나지 않겠구나.
어제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며, '내가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 무시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들은 게임하며 너무 신났던 마음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었을 텐데, 정작 나는 아이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 때는 귀를 기울여보려고 하지 않았구나, 그런 반성의 마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가 보통 관계가 답답하다고 느낄 때는, 상대방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만 나를 바라보고,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는 안 듣는다고 생각할 때였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아들과 얘기할 때 때론 그런 식의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거다. (사실 원래 남편이 늘 집에서 이런 식의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게 종종 싫을 때가 있었는데, 어쩔 때 보면 나도 그러고 있었던 거다.)
어제 새벽 아들이 잠이 안 온다며 소파에서 책 읽는 내 옆에 머리를 기대고 5분 정도 가만히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이 녀석 키도 어느새 나보다 훌쩍 크고 여드름도 난 청소년이 됐는데, 가끔 하는 걸 볼 때면 3살 아기 때 하는 버릇이 나온다. 좀 슬프고 외로운 밤, 내 옆에서 조용히 앉아 같이 감자과자를 입에 넣어주고 세모 입으로 웃어주던 다정한 아기 때 모습이 보인다.
세월이 벌써 훌쩍 흘렀다. 아마도 투정 부리는 사춘기 아들도 훌쩍 둥지를 떠날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기 전에 즐겁고 사소하고 기분 좋은 추억들은 놓치지 말고 차곡차곡 모아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