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공간99도씨토요수업하며숲속에서
청소년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오늘은 토요동아리 시간에 동네 뒷산에 간다고 했더니 아이들도 처음에는 '에이~' 그러더니, 막상 밖으로 나가니 뭔가 장난스러워진다.
어슬렁어슬렁 숲으로 가는 아이들 발걸음이 귀엽다.
초반에는 덥고 벌레가 많다며 툴툴대던 친구들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면,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뭔가에 몰입한다.
밖으로 나오면 뭔가 마음의 방어벽이 사라지는지, 교사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기도 한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다들 기분이 괜찮은지, 평소 무뚝뚝하던 친구들도 먼저 실없는 말을 걸기도 하고, 친구들과 소소한 작당을 벌이기도 한다. 한마디 질문을 하면, 어느새 꼭 다물고 있던 입에서 또렷한 표현이 튀어나올 때, 속으로 생각한다. 'OO이 말을 이렇게 잘했구나. 이 좋은 목소리를 왜 그동안 못 들었을까.'
청소년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다양한 생태계처럼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 다르다는 게 보인다. 홀로 나무 사진을 찍거나, 땅의 뭔가를 유심히 관찰하는 아이, 귀찮을 때까지 친구들한테 계속 장난 거는 아이, 말이 많은 아이, 과묵한 아이, 친구들 무리 속에 있는 아이, 한 명의 친구와 소곤소곤하는 아이, 오래 생각하고 천천히 표현하는 아이, 새로운 걸 보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아이.....
그렇게 다른 아이들의 다름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나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속에 오래 담아둔 것들을 볼 수 있는 투시력도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아이들이 쓴 글을 볼 때, 어떤 편견이 없이 사물과 사람을 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거울 속에 비친 하늘 속 나무들은 다른 세계로 가는 포털이 되고, 친구들이 보는 렌즈 앞에서 아이들은 해맑은 꽃이 된다. 나무 사이의 햇살은 레이저 검이 되기도 하고, 해골의 눈동자가 되고, 게임 속 캐릭터가 된다. 나무의 커다란 뿌리 속에서 철학적인 이야깃거리가 숨겨져 있다.
숲속을 걸어 내려오며, 오랜만에 시골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가 한 달간 집에 머물러 참 좋다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아이가 자주 가던 시골 할머니 댁의 푸근한 공기와 정서가 느껴진다.
말이 없던 청소년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의 단단한 목소리와 둥글게 말리는 눈초리를 좋아한다.
오늘은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외할머니를, 아이유를, 까만 패딩을, 애니메이션을, 요리하는 아빠를,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상상해 봤다.
아이들이 10대 시절에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만나고, 느끼고, 말했으면 좋겠다.
눈 부신 햇살속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와서,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한바탕 신나게 웃을 수 있는 한 계절이 선물처럼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