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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Jun 24. 2021

깊은 우물 속 목소리

책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을 보며

최근에 416 단원고 아이들과 관련된 글을 쓸 일이 생겨서, 다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인터뷰집과 아이들 사진들을 보고 있다. 매년 416세월호작가기록단에서 쓴 책을 읽다 보면 마음속에 수많은 격랑이 인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게 얼마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는지, 신기하게도 책을 들춰볼 때마다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어떤 현장도 이렇게 삶의 모순과 부조리함, 깊은 슬픔이 배어있을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세상에 있는 어떤 책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2019년에 나온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떠오르는 삶의 의미를 힘겹고 아프게 떠올려 보게 됐다.    


7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모든 것들이 옅어지는 게 자연의 현상이라지만, 삶에서 결코 옅어질 수 없는 사건과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 책들을 통해서 목격하게 된다. 그래도 좀 덜 생각하게 되고, 좀 덜 억울해하고 있고, 좀 덜 슬퍼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묵은 죄책감과 불안이 긴 그림자처럼 참사 피해자들 곁에 있다는 걸 보게 된다. 오래된 트라우마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다. 사람들이 잊으면 잊을수록, 이미 다 끝난 사고로 단정 지을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살아갈수록, 어쩌면 상처는 더 안으로 깊게 파고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아이가 좋아하던 카레와 수박을 한동안 먹지 못하다가, 이제는 내 아이를 떠올리며 다시 먹는다. 수학여행 가던 아이를 위해 사줬던 시계를 쳐다보기도 힘들던 엄마는 그 시계를 그리며 마음을 치유한다. 그러나 여전히 엄마는 내 아이가 겪었을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벽을 보고 눕지 못하고, 형은 참사 당시 자신을 조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에 동생에게 아픈 죄책감을 품으며 산다. 생존 학생들의 부모들은 위태위태한 아이를 보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것만 같다. 


안산에 살면서 종종 얼굴 뵙게 되는 부모님들과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는 그분의 얼굴과 눈빛이 겹치면서 마음에 긴 파동으로 남았다. 그분들의 일상에는 평생 다 담지도, 말할 수도 없는 커다란 구멍이 깊게 자리 잡고 있겠구나.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 삶의 의미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는 것. 하지만 다시 내가 내쉬는 숨이 미안해질 때….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느 때보다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다는 걸 처참하게 느낀다. 모든 확신도, 모든 철학도, 모든 신념도 그 안에서는 다 부서지고 마는 것 같다. 그 긴 삶을, 깊은 죄책감을, 끝없는 상실감을 우린 알지 못한다. 그저 그 목소리 사이에 흐르던 긴 침묵을 오래 상상해 볼 수밖에 없다.      


올해 우연히 깨닫게 된 것은 2014년에 초등 4학년이었던 딸이 어느새 세월호 참사 때 별이 된 아이들의 나이가 됐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아이들과의 사소한 추억들을 떠올리시는 부모님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이젠 그 감정과 느낌이 피부로 다가온다. 손잡고 쇼핑하고, 맛집 갈 생각에 흥분하고, 밤늦도록 수다 떨고, 진로에 대해 얘기하다 싸우던… 이제 막 사춘기가 지난 아이와 나누던 짧지만 즐거운 모든 순간들을 나도 알게 됐다. 그때 아이들이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이제 곧 활짝 피어날 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는지, 이제 좀 철이 들었다고 가족과 친구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난 이제야 조금 알아보게 된다.     


이 고통은 마를 수 없겠구나. 이생에서는 끝도 없이 계속 흐르고 흐를 수밖에 없겠구나. 기어코 다시 아이와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 멈추겠구나. 부모님들의 온화한 미소와 허탈한 표정, 불안한 눈빛 속에 들어있던 깊은 우물을 잠시 들여다보고 온 것만 같다.      


아이들의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별이 된 아이의 중학교 친구들이 1주기 때 소녀의 아버지께 쓴 편지를 읽게 됐다. '이렇게 좋은 최고의 친구를 낳고 길러주셔서 감사하다'고, '친구와 짧지만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을 쌓게 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글을 읽으며 그분께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으셨을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19살 소녀들이 어떤 심리상담사보다 더 대단한 치유자라고 느껴졌다.      


그 지옥 같은 배에서 살아남아 소중한 친구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생존자들이 제발 죄책감을 벗어나 자신을 안아주기를, 너무 큰 괴로움에 잠겨 자신을 학대하지 않기를, 삶에서 오는 작은 행복과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며 잠시라도 안식할 수 있기를…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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