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좋아하고, 모토로 삼고 있는 문장이다. 원래 다니던 직장에 다니며 불행함을 느끼면서도, 섣불리 그만 둘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래, 6월까지는 다니는 걸로 하자...', '아냐 그때까지 못 견디겠는데... 그럼 3월까지?'
몸이 비교적 편하고 돈을 좀 많이 준다는 이유, 그리고 파트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그만두지 못하고 있었는데, 엥? 불현듯 깨달았다. 이것도 또 하나의 집착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단점들이 있었는데,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에 꾸역꾸역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는 내 본성이라기 보단 세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맞지 않는 곳에서 내 에너지를 빼앗겨 왔고, 소위 '시발 비용'으로써 폭식을 해댔으며, 처음 계획하고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로 망가지고 무너져만 갔다. 나도 모르게 늪에 빠져들 듯이, 서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말이다.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문제들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동기들과의 만남 속에서였다. 저마다 일상의 행복을 말하는 자리를 나는 벗어나고만 싶었다. 억지웃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동기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이유는 '뒤처진 느낌, 실패한 느낌' 때문이었다. 나를 뒤처지고 실패하게 하는 근본 이유가 뭘까, '외로움'이었다.
'행복해지려면, 아직 갖춰야 할 것들이 많아', '난 아직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무의식 때문에 나는 사람들도 멀리해 왔다. 근데 반대였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려면, 먼저 행복해야 했다. 그러려면 외롭지 않아야 했다.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선 그 무엇도 해내기가 힘들었다.
또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뿌리 깊게 자리한 무의식은 나로 하여금 언제나 제자리걸음만을 걷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부터 바꾸기로 결심했다. 일단 일하는 직장부터 말이다. 현 직장에 퇴사를 통보했다. 심지어 다음 직장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오늘에서야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은 다음 주 수요일이다).
이직이 쉽다고 해서 risk가 없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에 쓰긴 어려운) 몇몇 risk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갑자기, 그냥 내질러 버렸다. 그러고 나니까 이상하게 위험 안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기대감이 느껴졌다. 이 스릴감. 그래. 이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였는데.
오늘 아침 샤워하면서 생각했다. '맞아, 내가 생각한 나는 탐험가였잖아. 이제야 탐험을 시작하려는 느낌이 들어. 지금까지 나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이 느낌대로 가면 되는 거였잖아? 유영하듯이. 좀 가볍게. 걱정만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면서. 좀 허용해 주면서!'
그러면서 진부하게만 느껴졌던 '지금 당장 행복하면 된다'라는 말이 어쩌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느껴졌다. 더 미루지 말고, 지금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모험을 향해 말이다.
사실 '안정성'이라는 것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환상이 너무나 강력해 사람들은 자기 본성을 억누르고만 산다. 괴롭지만 안정적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그 환경을 강제로 박탈당하다면 어떻게 될까? 두려워만 했던 그 상황이 막상 닥치면 의외로 자신의 탐험가로서의 자질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붙잡을 동아줄이 있는 현재의 상황이 오히려 당신의 모험을 방해하는 것일 수도.